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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골아이네공부방에서 갑작스런 생일 축하 파티가 벌어졌다. 친구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자 한 아이가 멋쩍게 웃다가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끈다. 오세택 기자 |
“하늘 이모, 저 왔어요∼.”
“그래, 00이 왔구나! 잘 왔다. 해리포터 삼촌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어.”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 아이를 바라보는 김희경(율리아나, 그리스도 성혈 흠숭 수녀회) 수녀의 눈길이 따스하다. 하늘 이모는 김 수녀를 부르는 호칭. 생활복지사들은 대부분 이모, 자원 교사들은 삼촌 아니면 이모다. 엄마를 이모가, 아빠를 삼촌이 대신하는 것 빼고는 여느 집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식사나 간식을 준비하고, 아이들 공부 챙기고, 밖으로 놀러 가는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은 일상 그대로다. 서울 성북구 화랑로1길(하월곡동) ‘밤골아이네지역아동센터’. 요즘 말로 지역아동센터지, ‘그때 그 시절’ 달동네 공부방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
서른세 해를 열정과 인내로 아이들과 함께해 온 밤골아이네지역아동센터(센터장 김희경 수녀)를 찾았다. 전국에 있는 지역아동센터가 걸어온 발자취를 압축해 보여 주는, 천주교회에서도 전국적으로 가장 오래된 공부방 중 하나다. 1984년 3월 무료탁아소로 출발해 이듬해 공부방도 운영했다. 1995년 10월 폐쇄 위기를 겪었지만, 그리스도 성혈 흠숭 수녀회가 운영을 맡으면서 ‘밤골아이네’의 설립 정신은 이어졌다.
1990년부터 6년간 봉사자, 실무자로 지낸 김은미(요나)씨는 “주중은 물론이고 토ㆍ일요일까지 들락날락하다 보니 집보다 편한 공간이 됐다”며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무슨 일 생기면 안 되니까, 안 다치고, 불편하지 않도록 지켜주려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1997년 말 IMF 긴급구제금융 당시 아이들이 50∼60명에서 120여 명으로 급증했다. 2000년에는 밤골이 재개발되면서 두 번이나 전세를 전전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2004년 수녀회에서 2층짜리 단독주택을 사들여 무상으로 임대해 줘 안정을 찾았다. 20년 가까이 고려대 햇빛촌 동아리와 동덕여대 쿠사(KUSA) 학생들이 중심이 된 자원봉사도 든든한 울타리다.
현재 밤골아이네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45명. 김 수녀와 생활복지사 2명, 조리 담당자 1명을 합쳐도 49명을 안 넘는다. 아동복지법상 ‘49인’ 시설이다. 돌봄은 기본이고 학습도 챙겨 준다. 독서와 상담, 미술치료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사각지대 아이들에게 ‘대안 가정’을 만들어 주고자 한다.
김 수녀는 “또 다른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위로가 되겠느냐”고 반문하고 “우리가 1명의 아이를 돌보는 건 우주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김 수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밀려들고 자원교사와 생활복지사들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며 하나하나 챙긴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던 ‘해리포터 삼촌’ 김현욱(20, 한성대 국어국문학과 재학)씨는 “처음엔 공부방 아이들한테 다가가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따스한 보살핌을 주시는 수녀님이나 복지사들 덕분인지 일반 아이들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 ‘나비 이모’로 불리는 생활복지사 박희숙(56)씨도 “한동안은 아이들에게 공부, 공부했는데, 나무에 물만 잘 부어주면 되듯이 아이들에게도 사랑만 잘 부어 주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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