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 문화가 더욱 심화되면서 우리 삶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풍요롭고 편리한, 긍정적 차원으로 변화하고 있다. 반면 그에 못지않게 디지털 문화의 어두운 면도 다각적으로 체험하게 됐다.
먼저 우리 사회가 ‘중독사회’로 불릴 만큼, 인간성과 사회성을 파괴하는 여러 가지 중독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 가정을 들여다보니 아버지는 음란물 중독, 어머니는 쇼핑 중독, 딸은 SNS 중독, 아들은 게임 중독으로 온 가족이 ‘4대 디지털 중독’에 빠져 콩가루 집안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중독은 개인과 가정에 심각한 폐해를 가져다줄 뿐 아니라 동시에 신자들의 영성을 무너뜨리고 본당 공동체 안에서 상호관계를 단절시켜 결국 교회를 떠나 죽음의 문화에 매몰시킨다.
디지털 문화의 역기능으로 인해 가장 잠재적 폐해가 큰 세대가 영유아이다.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지만, 이제는 5세 이하 영유아까지 스마트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스마트폰이 육아 필수품이 됨에 따라 영유아의 스마트폰 최초 이용 시기는 평균 2.27세로 만 3세가 되기 전에 이미 스마트폰에 노출되고 있다. 문제는 스마트폰 사용이 뇌의 성장과 발달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처음 보여주는 시기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한다. 아이가 36개월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영상 기기에 노출되면 일방적인 시청각 자극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이의 뇌가 불균형하게 발달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정보를 습득하고 기억하고 판단하는 게 어려워지고, 언어 발달이 지연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영유아가 스마트폰에 자주 노출될 땐 감정 표현이 미숙해지고, 또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며,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한 달 전에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연 스마트쉼 문화운동 성과대회에서 만난 한 디지털 중독 전문가는 영유아의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영유아들에게 가장 해를 끼치는 부분은 그들의 공감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공감 마비가 생긴다는 것이다. 현재는 잠재군으로 남아있겠지만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될 때 더욱더 ‘무관심의 사회’ 혹은 ‘위험사회’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니 섬뜩해졌다. 여기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랑의 실천이 들어설 여지가 없을 수도 있다.
디지털 중독 중 일상생활의 흐름을 방해하는 ‘SNS 중독’은 청소년부터 노년 세대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주 마시는 커피에 빗대 카·페·인(카카오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 중독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스몸비’라는 신조어도 이런 중독을 대변한다.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빗댄 말이다. 하루 평균 5~6시간 SNS에 노출된 현대인들은 쉬는 시간에도 SNS를 봐야 안정감을 느끼는 미디어 중독 현상으로 인해 ‘디지털 피로감’을 호소한다.
이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소음 중 ‘디지털 소음’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침묵과 고요 마케팅’이 뜨고 있다. 최고급 리조트나 여행업체에서 각종 디지털 기기와 생활 소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소음 디톡스’ 상품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보고 읽는 소음’이 되어버린 SNS에서 가끔씩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을 겨냥한 상품이다.
최근 불교 템플스테이가 각광을 받는 이유도 디지털 중독에 빠진 현대인에게 침묵과 고요의 시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소울스테이’를 마련해 침묵을 통한 자기 성찰과 반성, 그리고 기도로 신앙생활을 일신시키도록 피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상품화된 침묵과 고요 프로그램도 좋겠지만 신앙인으로서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피정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디지털 소음과 중독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사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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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