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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책 읽어주는 사제 / 김민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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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남성구역장들과 회식을 한 적이 있었다. 그중 한 구역장은 대형병원 방사선과에 근무하는 의사인데, 다음 날 세미나 프레젠테이션에서 무언가 감동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그 구역장에게 「나가사키의 노래」(2005)라는 책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나가이 다카시 박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 병원 방사선과에서 근무한 나가이 박사가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해 방사선에 노출시킨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렸다. 또한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피폭희생자로 살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글로써 세계평화에 기여한 가톨릭 신자임을 설명해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 구역장은 자신이 발표할 세미나에 너무나 좋은 아이템이라며 기뻐하였고, 다음 날 그 책을 사서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제의 역할 중에 하나는 신자들을 교의에 따라 가르치는 것이다. 전례, 강론, 성경, 교리, 강의, 훈화 등을 통해 신자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사제는 시대의 징표를 읽기 위해 늘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의 자세를 지닌다. 배움의 가장 근본은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제’는 “리더(leader)는 리더(reader)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제’는 분명 ‘책을 읽어주는 사제’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 신앙의 기쁨과 깨달음을 본인만 간직하지 않고 신자들과 나누기 때문이다. 최근에 주보를 통해 신심서적을 신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본당이 늘어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본당신부가 추천한 서적에 대한 신자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본당주보를 통해 두 달에 한 권씩 신앙서적을 읽도록 ‘본당추천도서’를 안내하고 있다. 그냥 개인이 알아서 읽으라고 하기보다는 독서진도표를 나누어주고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미사 강론 때 신자들과 함께 그 진도표에 해당되는 내용을 다루게 된다. 열심히 책을 읽어오는 신자와는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전혀 읽지 않은 신자라도 필자가 요약해주는 설명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신자들은 부담 없이 신선한 느낌으로 미사참례하며, 지루한 강론에서 벗어나 신앙생활의 기쁨과 즐거움을 체험하게 된다.

‘책을 읽어주는 사제’가 필요한 보다 중요한 이유는, 현재 한국천주교회가 처해있는 위기상황 때문이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교회는 인구대비 11에 해당하는 581만3770명의 신자로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이루어왔지만 성사 생활과 단체 활동, 그리고 신앙 교육은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교회의 세속화와 중산층화 같은 여러 위기 징후를 보이고 있다. 참으로 교회의 진정한 새로운 복음화와 신앙인의 영적 성숙이 필요한 때다. 교회 안의 영적 독서문화의 확대 노력은 영적 공허와 메마름을 체험하는 많은 신자들에게 하느님 은총의 오아시스를 맛보게 해주고, 교회와 그 구성원을 회개와 쇄신, 올바른 신앙실천, 그리고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는데 의미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 믿는다. 신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제들이 영적 독서문화의 확산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본당 신부들의 수호성인이신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는 깊은 성찰과 사색, 기도의 길로 이끄는 영적 독서가였다. 그는 교구사제들로부터 외모와 무식 때문에 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식한 사제가 아니었다. 성인전에 대해 철저히 알고 있었고, 강론과 교리 시간에 이 지식을 놀라운 기지로 활용했으며, 꾸준한 독서로 자신의 부족한 신학 지식을 채워 나갔다. 비안네 신부를 닮고자 한다면 책을 읽고 신자와 나누면 된다. 사제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평신도가 있다면 주저 말고 책을 선사하기 바란다. 다른 선물보다 책이 사제에게 기도 다음으로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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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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