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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거룩함이 일상이 될 때 / 김민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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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우리가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 거룩함이 우리 삶과 동떨어지고 추상화된 채 성인들만이 누리는 특권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는 말씀처럼 우리의 모습이 우리 신앙생활이 거룩해지고 있는가? 거룩함이 가정, 직장, 사회라는 일상 터전과 매일의 삶과는 무관하게 너무도 이질적인 유토피아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가?

베트남의 반투안 추기경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는 1970년대에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무려 13년간 감옥에 갇혀 수인 신세가 된다. 주교로서 교구민들을 사목하지 못한 채 고통과 절망 속에 긴 세월을 보냈지만 오히려 바깥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감옥 안에서조차 자신의 손을 제대 삼아 포도주 3방울로 미사를 봉헌하고 성경 구절을 기억하여 암송하면서 묵상과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았던 분이다. 그분이 계셨던 감옥은 하느님을 만나는 거룩한 곳, 곧 성지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역시 어느 곳에 있든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을 체험한다면 거룩한 곳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자리가 거룩한 곳이 된다면 우리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의 짧은 수필 「참새」를 읽다가 본능도 거룩해져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사냥을 마치고 집 정원으로 왔을 때 사나운 사냥개가 둥지에서 떨어져 발버둥 치는 새끼 참새를 발견한다. 그 순간 갑자기 나무에서 날쌔게 어미 참새가 날아와 새끼 앞에 내려앉고는 울부짖으면서 사냥개의 코끝을 향해 돌진하며 개의 주둥이를 공격하다가 온몸을 파르르 떨며 머리를 처박고 혼절한다. 돌발 사태에 놀란 사냥개는 꼬리를 감추기 시작하고 물러선다. 그 새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덤비는 어미 참새의 모성은 이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투르게네프는 훗날 “사랑은 죽음보다도, 아니 죽음의 공포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어미 참새로부터 배웠다”고 회고한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새끼를 살리려 하는 어미새의 필사적인 행동은 거룩함의 세계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것이 ‘거룩한 본능’이다. 부모 역시 자녀에게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줄 때 거룩한 본능이라는 DNA가 전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에 어느 고등학교에서 중요 직책을 맡은 아버지가 그 학교에 다니는 자기 자녀의 성적을 조작해준 그런 자녀 사랑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본능일 뿐이다.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인 본능의 소유자들인가? 어미 참새가 보여준 ‘거룩한 본능’을 배워야 한다.

당대에 거룩한 삶을 살다간 한 인물 또한 잊을 수 없다. 일본 가톨릭 문인이며 평화의 사도였던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참으로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준 분이다. 그의 묘비명은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이다. 그는 방사선과 의사로서 환자들이 얼마큼 X선에 노출되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실시하다가 백혈병에 걸리고 원폭에 피폭을 당해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드러눕는 신세가 된다. 그렇지만 그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권의 책을 집필하여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다. 분명 하느님은 연약함을 통해 당신 뜻을 이루시는 분임을 나가이 박사를 통해 보여주신다. 이처럼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온 나가이 박사의 거룩한 삶이 이 시대에도 빛난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일상 안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고 실천되는 가운데 남을 위한 희생, 헌신, 섬김 등으로 표현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몸을 통해서 남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바로 거룩한 일이고 하느님의 뜻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웃이 누구든 하느님 안에서 ‘생명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웃의 생명에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거룩한 존재가 되는 조건일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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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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