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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살아 있는 기억매체 / 김민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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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 본당에서는 도봉산본당과 연대하여 도봉산 근처 지역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연탄 나눔’을 실시했다. 약 160명의 두 본당 봉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연탄 3000장과 여러 가지 물품을 전달했다. 연탄은 여러 사람이 줄을 서서 릴레이 형식으로 나르는데 필자도 참가했다. 처음에는 가볍다고 생각했던 연탄이 시간이 갈수록 무겁게 느껴졌고,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다보니 온 몸이 뻐근했지만 모든 일정이 끝난 뒤 지역주민들과 함께 한 식사 시간이 어찌나 즐거웠는지, 힘들었던 생각이 사라져버렸다.

어려운 사람들과 나눔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주변화 되는 소외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려면 먼저 어려운 이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 기억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능력 가운데에는 하나로 꼽힌다. 인간은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고, 과거의 역사를 기록하며,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된다. 기억의 능력이 상실되거나 고의적으로 기억을 회피할 때 빚어지는 고통과 불행을 개인적이고 사회적 차원에서 경험한다. 예전에 독일 베를린을 여행했을 때, 가는 곳마다 과거의 역사를 재현해놓은 듯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보존하거나 기념해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다인 학살 추모공원’에 가보니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다인들을 기리는 2711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있던 시절 베를린 장벽을 넘나들 수 있었던 유일한 검문소 ‘체크 포인트 찰리’, 폭격을 받아 이가 빠진 모양으로 옛 모습을 간직한 베를린 대성당 등등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들은 기억의 현재화를 통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분단과 전쟁이 아닌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억은 종교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백록」을 저술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를 생각하고 망각한 것을 불러들여 현재화하는 인식능력으로서의 기억을 강조한다. 기억이 인식의 출발점이 되면서 나중에는 하느님을 인식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기억의 능력은 신앙생활에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매주일 혹은 매일 봉헌하는 미사성제는 ‘기억의 제사’다. 과거 2000년 전 예수님의 최후만찬을 기억하고, 그분의 십자가 상 희생을 재현하면서 현재 우리 삶에서 그분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되새기며 그 뜻에 따라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전례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의 현재화가 신앙 실천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미사 전례에 참례하는 신자들 중에는 오로지 그 시간 동안만 기억할 뿐, 성당을 떠나 삶의 현장에서는 망각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교회 안에서 소위 ‘치매 신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치매가 무서운 것은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상실하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는 그래서 불행하다. 하느님께 받은 수많은 은총이 깨끗이 ‘delete’(삭제)되고, 오히려 그분께 자신의 처지에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원망하는 ‘치매 신자’에게는 치료제가 필요하다. 컴퓨터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작동이 되지 않을 때 ‘초기화’하거나 ‘포맷’을 하듯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작업, 다시 말해서 진정한 회개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 시대 사제들은 ‘치매 신자’들을 식별하여 그들을 치유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게 하는 역할을 중요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대 영성가 헨리 나웬은 「살아 있는 기억매체」라는 책에서, 사제는 그리스도를 기억나게 하는 살아 있는 기억매체로 언급한다. 사제는 사목을 수행하면서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게 해주고 공감하게 해줌으로써 상처받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존재다. 또한 사제는 신자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한다.

과연 나는 살아 있는 기억매체로 성실하게 그 역할을 실행해왔는가? 물론 노력을 해왔겠지만 오히려 살아 있는 기억매체라는 명목 하에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해주기보다는 나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유혹에 빠진 적이 더 많은 것 같아 부끄러움이 앞선다. 사제뿐 아니라 신자들 모두가 ‘살아 있는 기억매체’로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기억을 살려내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훈훈한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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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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