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수두증 수술 후유증으로왼쪽 팔다리 마비된 중국 동포 이씨어머니 일자리도 끊겨 생계 막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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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포 이형식(가명, 30, 베드로, 서울 도림동본당)씨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마음껏 뛰어본 적이 없다. 선천성 수두증을 앓았던데다, 수술 후유증으로 팔다리가 마비된 채 살아온 탓이다. 수두증은 뇌척수액이 막혀 잘 흐르지 못하게 돼 뇌실에 물이 고이는 증상이다.
어머니 김순옥(가명, 마리아)씨는 아들이 태어난 지 56일 만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눈은 흰자위만 보였고 머리는 점점 부어서 곧 터질 것만 같았어요.” 부랴부랴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의사는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했다. 김씨는 아들이 잘못될까 봐 너무 겁이 났다. 어려운 사정에 돈까지 빌려 중국 하얼빈에 있는 큰 병원에 갔지만, 치료가 안 된다고 했다. 종교가 없던 김씨는 무작정 하느님께 매달렸다.
“친척이 가톨릭 신자였어요. 기도하는 법도 몰랐지만, 함께 묵주를 들고 기도했어요.” 김씨의 기도가 전해진 것일까. 한 달쯤 지났을 무렵 기적적으로 아들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때 김씨와 아들은 세례를 받고 주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수술을 피할 순 없었다. 김씨는 겨우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아들은 2007년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수술 후유증이 문제였다. 뇌척수액이 빠진 자리에 출혈이 생기고, 뼈도 비정상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후유증으로 결국 이씨는 왼쪽 팔다리가 마비됐다.
김씨는 남편과 함께 2000년 한국에 왔다. 생계를 위해 악착같이 살았지만, 남편 건강도 갑자기 나빠져 일할 수 없게 됐고, 설상가상 중국에 머물던 아들도 돌볼 사람 없이 혼자 남겨졌다. 김씨는 2014년 아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공사 현장, 요양원, 숙박업소 청소, 식당 등 김씨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혼자 번 돈은 대부분 병원비로 들어갔다. 최근 일하던 식당에서 관두라는 얘기를 듣고 나온 뒤로 더 이상의 수입이 없다.
왼쪽 팔다리가 마비된 채 지내온 이씨는 그간 코로나19 상황과 함께 떨어진 면역력 탓에 외출을 못 하면서 다리 근육도 점점 줄어들어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이씨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거기다 반지하인 집에서 외출하려면 방에서 1층 대문까지 이불을 깔아 기어서 가야 한다. 그래야만 휠체어를 탈 수 있다.
그런데도 이씨는 매 주일 성당을 찾아 미사에 참여한다. 불편한 몸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견진 교리교육에 참여해 견진성사도 받았다. 성당에만 가면 그저 마음이 행복하다는 이씨. 그는 미사 중 자신을 도와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가족을 도와준 이들을 위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하루빨리 평안해지길 기도합니다.” 짧은 말을 전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후견인 : 이연희 베네란다(서울 도림동본당 총회장)
이형식씨와 가족이 힘든 상황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톨릭평화신문 독자들의 따뜻한 관심과 기도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