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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38) 식별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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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서 ‘식별’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할까?

언젠가 한 모임에서 필자가 ‘식별’이란 말을 꺼냈을 때, 한 교수님께서 AI가 하는 안면 인식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으셨다. 식별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성질이나 종류를 알아서 구별하는 것이기에, AI가 사람의 얼굴을 다른 사물이나 동물과 비교해 분간해낼 때 식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나름 일리가 있다.

신앙에서 말하는 식별은 매우 다르다. 식별은 공동체나 개인이 삶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나 부르심을 읽는 영적 행위를 의미한다. 요즘 회자되는 시노달리타스란, 현시대의 도전 앞에서 하느님 백성 전체가 선교 사명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함께 식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뜻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함께 모여 기도하며 경청하고 대화할 때, 하느님의 뜻이 조금씩 명확히 드러남을 경험한다.

식별은 신학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신학생 양성 과정은 궁극적으로 사제 성소를 식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제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식별하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준비하고 투신하는 것이 신학생 양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사람이 내가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인지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은 양방향에서 이루어지는 식별이며, 그 결정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무르익는다.

필자에게도 사제직으로의 부르심을 식별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려서 사제가 되려는 마음을 품었으나,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일반 대학에 진학하였다. 이후 레지오 마리애 단장과 중고등부 교리교사로 봉사하는 과정에서 사제가 되려는 마음이 다시 생겼고, 결국 일반 대학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사제로서의 삶이 정말 나에게 맞는 삶이며, 내가 진정 행복한 삶인지 검증해야 했다. 군 생활을 포함한 10년여의 시간을 거치며,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사제직을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길, 내 삶을 바칠 길로 식별할 수 있었다.

식별은 사제 성소와만 상관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당신과 함께하는 거룩한 삶으로 부르신다. 이 부르심을 읽고 그에 응답하는 것도 식별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신앙생활이 나에게 맞는 삶인지 식별해야 하며, 그것은 한순간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삶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인지 실제로 살아보아야 한다. 그 삶이 인간 본성을 거스르기에 유혹과 시련이 있기 마련이며, 그 과정에서 힘겨워 포기하거나 싫증을 내고 떠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을 떠난 삶이 자기가 진정 원하는 삶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게 된다. 나에게 진정 행복한 삶이 신앙의 삶임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며,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길임을 식별한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은 식별하는 신앙이다. 식별하지 않을 때, 신앙은 수동적이며 의무와 형식에 머물게 된다. 식별하는 신앙은 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흘러가게 버려두지 않는다.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자 한다. 신앙인에게 매일의 삶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말씀을 건네시며 다가오는 계시의 장소가 된다. 신앙은 아주 사소한 일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읽고자 하며, 하느님께서 늘 함께 계시며 구원으로 이끄심을 깨닫는다.

나는 식별하는 신앙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의무와 형식에 머무는 수동적인 신앙인가? 사순 시기에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 아닐까.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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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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