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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전염되는 외로움(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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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진화이론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종의 기원」과 더불어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란 책도 썼다. 침팬지는 사람과 거의 같은 수준의 사회적 애착 감정을 갖고 있어서 슬픔과 기쁨을 사람과 비슷하게 표현한다고 한다. 깊은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은 때로 격렬한 몸의 제스처를 통해 상실과 애통함을 완화하는 위안을 얻는데, 사별한 침팬지도 그렇다. 이상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철창에 몸을 부딪치거나 짚더미 밑으로 머리를 찔러 넣고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신음하기도 한다. 혼자 남아있는 외로움으로부터 나오는 두려움에 마주하는 나름의 방식이다.

인간은 침팬지보다 훨씬 더 사회적이다. 우리는 친밀감을 갈망하며,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다. 20세기 이전에는 전 세계 인구의 1만이 혼자 살았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역사적으로 경쟁, 양극화, 개인주의가 심화될수록 사생활의 요구가 커졌고, 그 대가는 외로움이다. 지금 한국은 10명 가운데 3명이 1인 가구다. 10명 중 6명이 고립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가족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는 이들이 훨씬 많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도 혼자 살 수 있고, 혼자 살지 않아도 외로울 수 있지만, 외로움과 ‘혼자 사는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이때 외로움은 말 그대로 ‘집 없는’ 상태가 된다.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은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어디나 집이 될 수 있지만, 실존적으로 외로움을 겪는 이들이나 실제 집 없는 이들에게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외로움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다. 혼자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가차없는 힘 때문이다.

외로움은 공허한 감상이나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깊은 불안과 근심의 상태다. 그것은 확장되고 팽창한 슬픔이다. 외로움은 불안, 폭력, 트라우마, 범죄, 자살, 우울증, 정치적 무관심, 심지어 정치적 양극화 같은 수많은 문제의 배후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세상 일 모두가 외로움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며 새로운 사회 문제다.

2018년 미국 보건당국은 외로움이 ‘전염병’이라는 선언을 했고, 영국은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역시 연관이 있다. 이 둘은 공통의 징후와 결과를 나누고 있다. 모두 사별, 노년기, 독거생활, 낮은 교육 수준, 저소득, 자녀 부재와 관련 있으며, 특히 취약하고 아픈 이들에게 두드러진다. 외로움이 이어져 만성적인 상태가 되면, 돈이 없어 비참한 생활이 악순환 되는 빈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외로움은 빈곤이기도 하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빈곤은 ‘배제’이다. 경제적 궁핍일 뿐 아니라 사회, 정치, 심리, 영적인 결핍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유한 가치가 부정된다는 지속적인 느낌이나 자신이 타인의 삶에서 소중함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의심이야말로 관계의 빈곤, 존재의 빈곤이다. 존재와 관계는 인간에게 모든 것이다. 그러니 외로움의 원인도 무척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외로움은 이제 정책 의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의 갈증에 관한 보편적 문제여서, 작은 일이라도 우리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외로움은 우리가 증언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고통이자 극심한 가난이다. 그 깊은 고통을 겪는 곳에 함께 하는 일, 바로 우애의 일을 할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의 말이다. “누군가 우리의 말을 신실하게 듣고,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일 때, 우리 안에 매우 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서서히 두려움이 사라지고, 불안이 사라집니다. 누군가에게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경험이야말로 엄청난 창조의 힘입니다.”



박상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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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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