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1862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수사, 수련자와 신학생들의 수호성인
가브리엘 포센티 성인. 사진=굿뉴스
1831년 3월 1일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법률가 산테 포센티의 13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난 가브리엘 포센티 성인은 프란치스코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한 가브리엘은 4살 때 어머니를 잃고 큰누나 밑에서 자랐으나, 누나마저 콜레라로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스폴레토의 세액 사정관으로 임명된 뒤에는 그곳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가브리엘은 매우 지성적이며 능력이 뛰어났고, 문학과 예술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 이면에는 깊은 신앙과 성모님에 대한 신심,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가브리엘은 1856년 9월 21일 마체라타 부근의 모로발레에서 예수고난회에 입회하여 수련자가 되었습니다. 1857년 9월 22일 첫 서약을 하면서는 ‘성모 통고의 가브리엘’이라는 수도명을 얻었습니다. 가브리엘은 이때부터 사소한 일에서도 완덕을 얻으려는 특별한 노력으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밝은 성품과 기도 정신,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 규칙 엄수,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으려는 열망이 그의 모든 생활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그리하여 가브리엘은 짧은 수도생활에도 불구하고 완덕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1861년 소품(수문품·강경품<독서직>·구마품·시종품)을 받은 가브리엘은 대품(차부제품·부제품·사제품) 받을 준비를 계속했지만, 6년 동안의 수도생활로 체력이 소진되어 1862년 2월 27일 이탈리아 테라모 지방 이솔라 델 그란 사소에서 결핵으로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의 유해는 수도회가 이솔라 델 그란 사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성당에 안치되었으며, 지금까지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후 가브리엘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젬마 갈가니 성녀가 그를 통해 기도해 치유된 일도 있었습니다.
가브리엘은 1908년 5월 31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 비오 10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고, 1920년 3월 13일 베네딕토 15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가브리엘은 아브르초 지방의 수호성인이자 청소년, 특히 수련자와 신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가브리엘을 가톨릭 활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