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선 도심 주차를 하다 앞뒤 차와 살짝 부딪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범퍼는 주차 과정에서 상호 충격을 흡수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범퍼에 미세한 긁힘이 있어도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 경차라 해도, 상대편 부주의로 갑자기 부딪치는 데는 대책이 없다.
어느 날 젊은 사람이 내 아토스를 가볍게 들이받았다. 소리보다 상처는 크지 않았다. 차주가 내리면서 “신부님 죄송합니다. 다치지 않으셨어요?”하길래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면 됐으니 조심해서 운전합시다”라고 말하고 현장을 떠났다. 차림새가 사제복이라 대응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큰 사고가 아닌데 병원에 드러눕고 보상이 어쩌고 하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수도회원 수가 늘고 일정이 가중되면서 다른 경차에 관심을 가졌다. 연식과 주행거리·가격까지 고려하다 보니, 마지막 남은 마티즈가 빨간색이어서 잠시 망설여졌다. 어차피 새 차도 하루만 지나면 중고일 텐데, 외형보단 골목길 기동성과 가성비를 생각해 마음을 정했다. 사제가 빨간 마티즈를 몰고 다니니 오해도 받는다. “어느 자매님이 기증했느냐?”, “좋아하는 색이 빨간색이냐?”
한날은 본당 행사에 우리 회원 모두가 초대를 받았다. 작고 빨간 차에서 덩치 있는 외국인을 포함해 5명이 나오니, 봉사자들이 피식 웃는다. “예쁜 5인승 차량이라 구매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 파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이 손수레로 마티즈를 긁었다. 마음먹기엔 흉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데도 “하필 보험처리가 안 되는 손수레가 접촉했지?”라는, 불편한 마음이 남아 스스로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다고 느꼈다. 생각을 정리하며 차를 청소하는데, 트렁크 안에 마른 명태가 보자기에 싸여 있었다. 전 차주가 고사를 지내고 액운을 쫓고자 넣어 둔 것 같은데, 외형만 살피고 내부 정리를 제대로 하질 않아 몇 개월째 싣고 다닌 것이다. 불필요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 깜빡했던 축복식도 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커피 한잔 하며 마음을 달래는데 차량이 유독 빨갛게 보인다.
배수판 신부 도미니코 수도회 한국 로사리오회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