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리신학원 졸업생 4인방목포·평창·대전에서 원거리 상경신학원 인근 방 얻어 공부 매진선교사·교리교사 자격증 받아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공부하기 위해 2년간 서울에 집을 얻어 학업에 매진한 졸업생들. 왼쪽부터 김윤중(시몬), 이혜진(베로니카), 엄유진(아나스타시아), 전선숙(아폴로니아)씨. 이혜진씨는 천안에서 매일 통학하며 공부했다.
목포·평창·대전에서 원거리 상경신학원 인근 방 얻어 공부 매진선교사·교리교사 자격증 받아
교리와 신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목포와 평창, 대전에 살고 있지만 가톨릭교리신학원(원장 김진태 신부)이 있는 서울 혜화동 근처에 방을 얻었다. 월요일부터 주5일 학업에 매진하고 금요일 저녁에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갔다가 월요일에 상경하기를 꼬박 2년. 마침내 선교사ㆍ교리교사 자격증을 땄다.
가톨릭교리신학원 졸업 미사가 봉헌된 17일.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만난 졸업생 4명의 이야기다. 교리교육학과 엄유진(아나스타시아, 광주대교구 연동본당)ㆍ전선숙(아폴로니아, 원주교구 대화본당)씨와 종교교육학과 김윤중(시몬, 대전교구 궁동본당)씨다. 모두 54년생으로 만 70세, ‘만학의 꿈’을 꽃피웠다. 이혜진(베로니카, 42, 수원교구 북수동본당)씨는 낮에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퇴근 후 KTX로 매일 통학했다. 교통비를 학비만큼 썼다.
“지금까지 살아온 칠십 평생을 예수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삶의 굴곡이 컸고, 예수님이 아니면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평화로운 게 진정한 평화임을 깨달았습니다.”(엄유진씨)
“사별 후 아픔이 있었습니다. 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는데 힘든 일이 있을 때 무너지는 제 모습을 보고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하느님 말씀으로 다시 일어서고 싶었습니다.”(전선숙씨)
엄씨는 “주말에는 집에 내려가 살림과 가사뿐 아니라 성지순례도 틈틈이 다녔다”면서 “하느님은 자신을 죽이고 낮춰야 보이는 분이라는 것을 공부하며 느꼈다”고 털어놨다. 본당 입교식 때마다 3~4명을 주님 앞에 데려온 엄씨는 “잘 못 먹고 살던 시절에는 닭죽 쒀서 가면 선교하기가 쉬웠다”면서 “요즘은 풍족해진 만큼 선교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제대로 선교하고 싶어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씨는 “공부하면서 인간관계 안에서 자유로워졌다”면서 “사람을 대할 때 ‘왜 저러지?’ 했던 마음이 ‘저럴 수 있겠다’로 바뀌었다”고 했다.
김씨는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으로 퇴직한 후 북한 선교에 대한 관심으로 신학원에 입학했다. 김씨는 “남북관계가 완전히 막힌 상황이지만 북한 선교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서 “신학의 기초를 쌓을 수 있었고, 2년 동안 밥 해먹으며 혼자 사는 연습을 했다”며 뿌듯해 했다.
이씨는 “파업과 폭우로 기차가 운행하지 않을 땐 전철로 3시간 걸려 신학원에 가야 했다”며 “코로나로 신앙적 갈증이 심해졌고, 세례받은 지 10년이 됐는데 교리ㆍ성경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 없어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구요비(서울대교구 중서울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는 이날 미사 강론에서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 안에 근원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알고 싶어하는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신뢰를 가져야 한다”면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안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교리교사로 힘차게 나아가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날 졸업 미사에서는 교리교육학과(64회) 18명, 종교교육학과(54회) 14명이 선교사 및 교리교사 자격증서를 받았으며, 신학심화과정(4회) 학생 7명이 수료했다. 1958년 문을 연 가톨릭교리신학원은 평신도, 수도자들에게 교회 가르침과 신학 전반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전수하며 교리교사와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