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한 편에서는 이웃 나라에게 총을 겨누고, 다른 한 편에서는 하나였던 나라가 둘로 갈라져 ‘다시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날선 비난을 이어오고 있다. 충돌의 현장에는 죽음과 공포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갈라진 틈에 종교인들이 손을 잡고 함께 섰다. 교리는 다르지만 ‘평화’라는 공통된 가치를 찾고자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종교인들이 마음을 모았다.
2024 DMZ 생명평화순례에 천주교 대표로 참여한 의정부교구 제6지구장 이은형(티모테오) 신부는 “우리나라 역사의 큰 아픔이 서려 있는 한반도의 허리선을 지나며 종교인들이 함께 평화의 기도를 하면 치유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염원을 담아 4대 종단이 함께하는 순례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임진각, 백마고지, 철원DMZ생태평화공원을 거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끝나는 400㎞의 여정. 일정 중에는 장파리공소, 해안성당, 고성원불교교당, 초도제일교회 등 각 종단을 대표하는 장소도 포함됐다.
4대 종단은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위해 기도를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9·19 군사합의가 파기되는 등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하자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고자 뜻을 같이한 것이다.
침묵 중에 각자의 기도를 바치며 걷는 22일의 여정. 이들의 순례는 고요했지만, 간절한 기도 속에 담긴 에너지는 뜨겁고 무거웠다.
이 신부는 “2월 29일 순례를 시작하고 3월 1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 선포식을 하고 다시 함께 걷는 여정으로 기획했다”며 “첫날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임진각까지 20㎞가량 걸으며 몸이 고되긴 했지만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고통이나 아픔을 생각하며 더욱 간절히 기도하며 걸었다”고 말했다.
성당 안에서 하던 기도는 분단과 아픔의 현장에서 더욱 큰 울림을 전했다.
이 신부는 “평화와 북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념적인 가치에 쉽게 혼동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며 “이때 우리가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어떤 지향을 두고 하셨는지다”라고 전했다.
승복을 입은 스님과 로만 칼라를 한 신부, 묵주를 든 수녀가 함께 걷는 발걸음에는 미움과 상처를 치유하는 평화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스님 옆에 선 이 신부는 긴 여정을 걸으며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며 걷고,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 안에 많은 이들이 기도로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