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모래내본당 최고령 신자 이종옥(도미니카·97) 할머니는 올해도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손뜨개질을 하느라 바쁘다. 할머니는 지난해부터 부활·성탄마다 손뜨개질로 만든 수세미를 500개씩 떠서 본당 전 신자에게 선물하고 있다. 1년 내내 수세미 1000개를 뜨는 강행군이지만 이 할머니는 오히려 “나누는 기쁨이 더 커서 오히려 뜨면 뜰수록 힘이 차오른다”며 웃었다.
소소한 선물이지만 바늘코마다 순수한 선의만이 깃들었다. 특별한 이유보다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서 시작된 이 할머니의 나눔이기 때문이다. 46세 무렵,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지 않았는데도 문득 “성당에 가야겠다”며 신앙을 갖게 됐듯 “인간의 뜻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서 이유를 찾는다”는 그의 고백대로다.
소학교(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좋아해서 시작한 뜨개질은 이 할머니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오랜 방법이다. 젊어서도 조끼, 스웨터, 치마 등을 떠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손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순간 잡념도 어느새 사라질뿐더러, 선물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한 코 한 코 기도도 같이 해줄 수 있다”는 할머니만의 기쁨도 있다.
알고 지내는 신자들에게만 장갑, 목도리 등 큰 선물을 할 수 있지만 수세미를 뜨기로 했다. “작은 선물이더라도 최대한 많은 신자와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미사에 참례하는 교우가 450명이라 500개씩 뜨고 있어요. 오랜만에 성당에 나온 교우나 이웃 본당 교우들과도 나누고 싶어서 50개씩 더 뜨고 있답니다. 특히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세미를 나누는 것도 많은 교우가 성당에 오는 날이기 때문이에요.”
수세미를 받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 할머니는 “날아갈 것처럼 기쁘다”고 표현했다. 특히 “할머니 팔 아프신데 그만 떠 주시고 쉬셔요”라며 이 할머니의 수고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내 마음을 알아주니 오히려 힘이 안 든다”고 미소 지었다.
옷 뜨개질보다는 손이 덜 가도 수세미를 뜨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이 할머니는 “기분 좋은 날에는 하루 20개씩을 뜰 때도 있지만 컨디션이 나쁘면 하루 한 개도 뜨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척추와 고관절에 병이 있어 하반신도 잘 쓸 수 없는데 다리는 만지기만 해도 아프다. 앉아서 뜨개질에 집중하다가 침대에 눕기를 되풀이하는 투혼은 필수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부활과 성탄의 신비를 묵상하며 열두 달 내내 뜨개질을 한다. “되살아남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나누어 지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힘의 원천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은 뜨개질뿐이지만 그로써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고 싶다”는 이 할머니. 그는 “보잘것없어도 부엌 한편에 늘 있는 수세미처럼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한다”는 유일한 작은 바람과 함께 “힘닿는 데까지 매년 선물을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작은 선물에도 고마워해 주시니 제가 오히려 더 고맙고 힘이 납니다. 나중에 주님 부활 대축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세미 할머니 생각난다’며 위령기도나 한번 해주셔요~!”
이종옥 할머니는 “작은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는 기쁨으로 오늘 하루도 수세미를 뜨고 있다”면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