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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보다 두려운 외로움…대화가 절실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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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벗이 돼 주시는 고마운 분들과 제 지난 날 행복했던 이야기를 나누니, 오늘도 다시 힘내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5월 14일 서울 동자동 쪽방촌 주민 이공률(요셉·82) 어르신의 집에서는 특별한 요리 교실이 펼쳐졌다. 한때 중식, 양식 등 못 하는 음식이 없는 50여 년 경력 베테랑 요리사였던 어르신에게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가톨릭사랑평화의집(사무국장 윤병우 미카엘 신부, 이하 사랑평화의집) 정서 지원 봉사자들이 찾아와 당근을 가지런하게 채 써는 기술 등 요리사의 비법을 배우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느 쪽방촌 주민처럼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살아가는 어르신은 “당뇨 합병증으로 점점 괴사하는 두 발의 고통보다 힘든 건 단절”이라고 호소하며 “봉사자들이 들를 때만큼은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사랑평화의집은 2022년부터 이처럼 쪽방촌 주민들에게 식사·물품 지원 외에도 정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도시락과 생필품을 전하면서 짧게 안부 정도 묻는 게 아니라 주민 한 명 한 명 주기적으로 방문해 20~30분씩 일상 대화를 나눈다.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단절에 대한 위로기 때문이다. 쪽방촌 주위에는 다양한 동행식당(쪽방촌 주민에게 하루 한 끼 무료 제공하고자 서울시가 지정한 민간 식당), 대형 급식소 등이 생기고 있어 굶는 주민은 없다.

 

 

주민들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는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믿었던 이에게 사기를 당하고, 고부 갈등처럼 방치됐던 사소한 가족 불화가 완전한 의절로 이어지고 가출하는 등 과거는 그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집 밖을 나가기는커녕 하루에 20 단어 이상 말하지 않는 주민도 많다. 주민끼리도 서로 경계해 쪽방촌은 늘 고독사 위험군을 면치 못한다.

 

 

사무국장 윤병우 신부는 “다들 상처가 깊어 의례적 인사만 할 뿐 주민끼리도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한다”며 “고독사에 가장 취약한 그들이 존엄을 잃는 것은 막아야 하기에 정서적 동행을 최우선 목표”라고 전했다.


 

 

봉사자들은 주민들이 지난날 행복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다가간다. ‘나도 이렇게 근사한 인간이었지’라는 자긍심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문도 열어주지 않던 주민들은 어느새 긍정적 변화를 보인다. 봉사자들에게 아끼는 물건을 보여주며 옛날이야기를 해주고, 가는 길을 배웅하기도 한다. 만나지 않던 벗에게 먼저 연락하고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등 스스로 조금씩 단절을 극복하는 사람도 있다.

 

 

“할머니 젊어서도 이렇게 예쁘셨네. 진짜 ‘퍄오량’(漂亮, 예쁘다)해요~”

 

 

이날 봉사자들은 중국에서 온 최복음(91) 할머니 집에도 들러 옛날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낙상 우려로 방 밖을 나서지 못하는 할머니는 하루 4시간 정도 머무는 요양 보호사 외에는 아무도 찾는 이가 없다. 할머니는 “‘예쁘다’는 봉사자들의 칭찬은 태초에 나를 사랑으로 빚으셨던 ‘하나님’ 은혜를 생각나게 한다”며 “''자주 올게요''라는 봉사자들 말처럼 다음 만남을 기다리겠다”고 전했다.

 

 

※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502-645252(예금주 천주교서울대교구유지재단)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catholiclp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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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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