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2023년2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국회의원 연구단체 <약자의 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의 만남에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대주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 확장과 자유로운 이동권 실현은 단순히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용어부터 ‘우리 모두를 위한 자유로운 이동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면 둘. 정순택 대주교는 올해 1월, 상반기 정기 인사발령을 통해 교구장 특임사제인 ‘장애인 사목 특임사제’ 직책을 신설하고 이 자리에 나오진 신부를 임명했다. 나 신부는 특정 본당·기관에 속하지 않고 교구장 직속으로 교구의 장애인 사목을 두루 살피는 소임을 맡는다.
발령에 앞서 정 대주교는 2024년 사목교서를 통해 “‘시노드 교회’를 향해서 힘차게 계속 걸어가는 한 해가 되자”고 강조하면서 “‘하느님 안에서 우리’를 만들어 가고, 누구도 소외됨 없이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당부했다. 시노드는 ‘함께 가는 길(syn-odos)’이라는 뜻이다.
장면 셋. 5월 말, 미국에서 해외선교 중인 박민서 신부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도착했다. 워싱턴대교구에서 청각장애인 사목을 하며 시카고 가톨릭 연합신학대학원(Catholic Theological Union in Chicago)에서 실천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
박 신부는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한국어·한국수어·미국수어에 이어 저의 네 번째 언어인 영어로 박사논문을 썼다. 그동안 성공회와 감리교에서는 농인 성직자가 농인 교회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지만, 가톨릭교회에서는 제가 처음이라고 한다”고 말하면서 “세계 농인 신자들에게 저처럼 여러분도 신학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라고 기쁜 소식을 전했다.
박 신부의 박사논문 제목은 <에파타!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Ephphatha! Deaf Church Responds to Synod on Synodality)>이다. ‘에파타’는 ‘열려라’라는 뜻이다. 박 신부가 이룬 결실로 농인 사목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게 됐다.
△ 시카고 가톨릭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민서 신부
시노드 교회로 함께 나아가는 여정 안에서 장애인 사목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할까. 기관(시설)·단체를 통한 복지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교회,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모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교구 장애인 사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하는 시기, 교회 안에서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 교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 의견을 마중물 삼아 앞으로 교구 내에서 장애인 사목에 관한 담론이 더욱 확장되기를 희망한다.
■ 시각·청각장애인 본당 2곳, 발달장애인 주일학교 15곳
현재 서울대교구에는 두 곳의 장애 맞춤 본당이 있다. 청각장애인 본당인 에파타성당(김현덕 주임신부, 성동구 소재)과 시각장애인 본당인 성라파엘사랑결성당(김용태 주임신부, 강남구 소재)이다.
또한 15개의 본당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교구 청소년국 장애인 신앙교육부가 연계부서로 발달장애인 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장애인 주일학교 운영 본당 – 명동, 신당동, 연희동, 이문동, 번동, 창동, 노원, 광장동, 명일동, 가락동, 잠원동, 대방동, 오류동, 등촌1동, 양천)
장애인 신앙교육부를 담당하는 최영우 신부는 “장애에 대해 잘 모르거나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피하는 경우도 있고, 사목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애인이 소외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면서 “교회 안에서조차 소수에 대한 이해보다는 다수에 대한 이익과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시노드 로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소년과 어린이,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모두가 일치된 수평적 친교를 강조하고 있다. 조금은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주님께로 향해 함께 가는 유일한 길임을 기억하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최 신부의 부임 후 교구에서는 그동안 필요성이 논의되었던 장애인과 함께하는 성사 거행 지침(2021년), 장애인 주일학교 운영지침(2023년)을 제정했다.
△ 청소년국 장애인 신앙교육부에서 제작한 주일학교 교리서
장애인 주일학교 26년 차 교사인 이경선(세례명 스텔라)씨는 “성사 거행 지침을 통해 체계가 잡혀간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 주일학교 신자를 처음 만나는 사제·수도자, 교사들이 가지는 막연한 어려움을 지침 활용을 통해 해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교리서가 예전보다 많이 업그레이드 되어 학생들의 수준(초급·심화)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적은 교사 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워크북을 토대로 학생들과 재밌게 교리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씨는 “가정 안에서도 발달장애인의 신앙생활을 도울 수 있도록 적절한 보호자 교육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제언했다.
■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장애인 사목이 수도회 카리스마인 작은 예수 수도회의 봉하령 신부는 “먼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시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봉 신부는 “장애인들은 자신이 ‘판단 받았다’라는 느낌을 받으면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면서 “비장애인의 기준이 아닌 장애인의 입장에서 그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박민서 신부의 의견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박 신부는 “농인 학자들은 ‘청인이 농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농인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야 하고, 농인의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라고 전하면서 “모든 기준과 시선은 청인(비장애인)이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내기 성직자는 장애인 사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올해 2월 부제서품을 받은 김동준(세례명 갈리스토) 부제는 “사목 현장에서 주로 책임자로 있는 성직자·수도자가 각 장애가 지닌 문화와 특성에 대해 개방성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한국 사회는 지난 몇십 년간 장애인 복지가 급속도로 발전했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시민들의 높아진 ‘장애감수성’”이라고 말하면서 “카페에서 주문할 때 청각장애가 있다고 미리 언급하면 입을 보여주며 천천히 말하거나 필담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낯설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 확연히 많이 줄었다”라고 말했다. 김 부제는 한국수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이다.
김 부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자는 겸허한 자세를 취했다. 한국교회 역시 사회에서 점차 발달하는 장애감수성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 이해의 모습을 배우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뜻을 밝혔다.
■ 무엇이 ‘장벽’인지 깨닫는 것
△ 세계주교시노드 로고
교회 안에서 비장애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묻는 질문에 봉하령 신부는 “특별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탈피해도 된다”고 답했다. 이어 “장애인이 원하는 도움이 있으면 그 도움을 주면서, 비장애인 역시 그 순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섭리를 느꼈으면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봉 신부는 “‘한 사람’으로서의 생각과 판단을 인정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섣부른 측은지심은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장애인이라는 단어에서 장애가 아니라 ‘인(人)’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배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장애를 가진 구성원에 대한 배려는 ‘특별한 것,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함께 누려야 함을 알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임을 말이다.
박민서 신부는 “농인들이 농인성당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언어적 소수집단 ‘공동체’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그 공동체 안에서 농인들은 스스로 전례와 단체활동, 교육 등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회·문화적으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가 확장되어 가는 추세다. 교회 안에서도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장벽인지 느껴야 한다.
나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몇 센티미터에 불과한 단차가 누군가에게는 앞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누군가는 그 말을 본다는 것을, 내가 외국어보다 우리나라 말을 더 편하게 쓰듯이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항상 생각할 수 있다면, 장벽은 우리 마음 안에도, 밖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4월20일, 유경촌 주교(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는 장애인의 날 담화문을 통해 “장애인을 향한 차별과 편견이 없는 교회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본당 신자 모두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함께 살아갈 때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 열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모두가 참여하는 ‘시노드 교회’를 향해 걸어가는 길, 에파타! 진정 열려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함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