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청인들과 소통이 어려운 농인들에게 소통의 중재자뿐 아니라 웃음을 전파하는 ‘해피바이러스’가 되어주는 것이 꿈이죠.”
농(聾)통역사 정원철(레오·45·서울 개봉동본당)씨는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 전문 레크리에이션 지도사로 20년째 활동하고 있다. 건청인들과 아무 차이 없이 수강하고 시험을 치러 레크리에이션 지도사 1급 자격을 따낸 정씨는 지난 2일 한국가톨릭 농아인의 날 행사에서처럼, 교회 안팎으로 전국 농인 관련 행사와 모임에서 농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농인을 위한 전문 레크리에이션 지도사가 없었기 때문”에 정씨는 꿈을 꾸게 됐다. 실제 농인이면서 자격증을 지닌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건청인 지도사들이 펼치는 레크리에이션은 농인들과의 웃음 코드에 맞지 않아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시각적 언어인 수어를 모어로 해 눈에 보이는 정보에 크게 의존하는 농인들의 특성을 건청인들은 충분히 헤아리기 어렵다.
정씨는 “이처럼 웃을 기회에서 소외된 농인들이 진정으로 공감하고 웃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고 밝혔다. “문맹이거나 표준 수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등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농인들의 말을 알아듣고 표준 수어로 바꿔 수어통역사에게 전달하는 농통역사의 ‘중개자’ 역할과 상통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한 진심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레크레에이션 관련 자료는 건청인 중심으로 마련돼 있었고, 한국어를 제2언어로 하는 농인의 높지 않은 문해력은 학습에 발목을 잡았다. “농인에 맞는 콘텐츠와 게임을 연구할 때도 혼자서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정씨의 회상대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성격과 재능을 다른 농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극복의 힘이 됐다.
“원래 위트를 즐기고 유머러스한 성격이에요. 그러한 탈렌트도 봉헌하고 농인들만의 문화와 방식에 맞게 나름대로 연구한 걸 바탕으로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니까 다들 ‘너무 속 시원하고 좋다’고 반응해 주시더라고요. 하느님께서 저를 이렇게 쓰시려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빚으셨나 싶어요.”
고령이 무색하게 앞으로 뛰어나와 즐겁게 참여하던 어르신들, 지적장애까지 있음에도 프로그램을 열심히 따라와 주던 젊은 친구들…. “우울했던 분위기가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자 신나게 흔드는 몸동작과 환호로 밝아지는 걸 보면 나도 생명의 기운을 함께 느끼고 힘을 얻는다”고 정씨는 고백했다.
이렇듯 충만한 보람이 주어지기에 그만의 노하우도 쌓였다. 관중이 프로그램을 건조하게 느끼지 않도록 제스처와 표정에 익살을 싣는 법,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쉽게 흥미를 끌 수 있는지 등 건청인 지도사는 알 수 없는 독자적 요령이 자연스레 터득됐다.
“레크리에이션은 성당에서 하느님, 교우들과 대화하며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신앙생활과도 같다”는 정씨. 그는 “레크리에이션의 진정한 목적은 우리가 함께 웃음으로써 한 공동체에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와 교회도 레크리에이션처럼 다름과 차별을 딛고 함께 웃으며 연결감을 느끼는 터전이 되길” 희망했다.
“비장애인 중에도 여러 형태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차별 없이 서로 어울리며 함께 ‘하하’하고 웃는 공동체를 이뤄 살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