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선조들의 삶은 지금 내 신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은 공동체성을 띄기 때문이지요. 순교자들의 삶과 자취를 더욱 명확하게 따르기 위해서 교회 유산과 과거의 기록을 찾고 보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박해시대 197명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공주 향옥터의 시굴에 힘쓴 대전교구 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 김성태(요셉) 신부는 “신앙을 매개로 한 과거의 기록도 신앙인들에게 성사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당시 전체 천주교 신자의 4분의 1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알려진 충청도, 그 중 공주는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의 소재지이자 관찰사가 부임하는 행정 중심지였다. 이러한 이유로 공주에 향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정확한 터의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이 참수된 황새바위는 성지로서 알려졌지만, 공주 향옥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습니다. 학술대회 개최와 연구를 통해 공주향옥에서 197명이 순교했다는 것을 밝혀냈고 그 터를 찾는 것이 교회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연구소를 공주로 옮기며 향옥터를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한울문화유산연구원이 유적 시굴조사를 실시한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114-5 일원은 내포교회사연구소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다. 시굴조사 결과, 연구원은 이곳이 공주 향옥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공주 향옥은 손자성(토마스) 성인이 교수형으로 순교한 곳으로 알려졌고 그 밖에 많은 신자도 고문 후유증으로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순교지로서 뿐만 아니라 이존창이 조선에 성직자를 요청하는 서한을 작성해 보내고 소통했던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죠.”
연구소를 옮기고 옥터로 추정되는 곳을 시굴하며 역사적 증거를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어 낸 것에는, 현대 신앙인들이 신앙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이 과거의 기록에 있다는 것을 알고 물심양면 지원한 대전교구 성지위원회 위원장 한정현(스테파노) 주교의 동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국에 수많은 성지가 있고 우리는 그 곳에 담긴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알고 있습니다.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체험하는 신앙은 깊이와 애착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유산과 과거의 기록을 찾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공주 향옥터 발굴은 이제 시작이지만 신자들은 물론이고 신자가 아닌 분들도 이곳에 와서 신앙적 감성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 또한 좋은 선교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