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구는 장기 사목계획에 따라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기치로 삼고, 교회 사명의 여러 측면을 재조명하며 쇄신하는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그 첫 단계인 말씀의 해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여정의 길잡이로 받은 우리는, 친교의 해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를 살고 증거하는 사명을 실천하려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두 해를 전례의 해로 지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개인의 내면을 성찰하고 정신을 고양하는 일을 넘어서, 무엇보다 살아계신 그분과 만나는 것이요, 그분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교서 「나는 간절히 바랐다」, 10항·12항 참조) 이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귀중한 자리가 전례입니다. 성찬례와 모든 성사 안에서 주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파스카 신비의 권능이 우리에게 이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전례를 통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고, 말씀과 성사적 표징들을 통해 성자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시며, 성령의 이끄심과 보호하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전례의 이러한 작용들은 우리를 고독과 고립으로부터 해방시킵니다. 1인 가구가 늘고, 세대·성별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불통과 단절의 현상이 뚜렷한 오늘날입니다. 전례는 인간을 홀로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피조물과 함께, 형제자매들과 함께 충만한 관계를 맺는 열린 인간으로’(「나는 간절히 바랐다」, 33항) 알아보게 합니다.
전례는 당장 눈앞에 놓인 것에만 매여 ‘그 이상의 것’ ‘더 깊은 차원’에 둔감한 우리 정신을 일깨웁니다. 전례의 상징들은 삼위일체 신비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로 이끌고 성령 안에서 서로를 만나게 하며, 세상 사물들을 감사하는 눈길로 바라보게 합니다. 전례를 통해서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불렸음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충실히 지키는 우리 역할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면을 특별히 유의해 전례의 이 풍성한 은총을 배우고 체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첫째, 모든 이가 자신의 특별한 소명에 따라 파스카 신비의 진리에 봉사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고 있든, 신앙 교육의 정도가 어떻든, 세례받은 이는 모두 복음을 전하는 주체입니다.(「복음의 기쁨」, 120항 참조) 전 세계 교회가 걷는 시노드 여정에 따라 본당과 교구의 전례위원회를 중심으로 더 많은 대화와 참여의 기회를 가집시다. 모든 이가 거룩한 전례를 체험하고 기쁘게 거행하는 방법들을 함께 찾아봅시다. 둘째, 전례 쇄신을 위한 노력은 전례의 본질과 성령의 활동 아래 있어야 합니다. 예식의 외적 형식에만 갇히거나, 예식 규정을 세심하게 준수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사랑에 불타오르는 예수님의 마음과 모든 신자의 마음(「나는 간절히 바랐다」, 57항 참조)이 맞닿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파스카 만찬에 함께 초대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전례 거행의 진리에 담긴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고 저마다 받은 특별한 소명에 따라 파스카 신비의 진리에 봉사하고 참여하도록 전례의 해 여정을 함께 걸어갑시다. 고독과 단절의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을 ‘기쁨과 희망’의 공동체로 초대합시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