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톨릭교회는 희망을 담은 희년 순례를 다시금 선포합니다.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에서 2025년 희년의 취지를 보면 “신앙인들은 구원의 통로인 예수님과의 관계를 보다 친밀하게 가져야 하고, 교회는 항상 어디에서나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을 우리의 희망이라고 선포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제주 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아픔은 4·3입니다. 4·3으로 파괴되고 수난당한 마음의 상처를 서로 위로하고 어루만지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좋은 심성을 회복할 때 제주도민들은 진정한 희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희년 정신이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유시키는 것이라 할 때, ‘제주 4·3’을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말할 수 없습니다. 희년의 실천은 시대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가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측면에서 교회가 올바른 평화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올해의 사목적 화두라고 여깁니다.
평화는 교회가 지향해온 소중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어떤 추상적인 명제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의 회복과 실천이어야 합니다. 태초부터 하느님의 창조적 질서는 우리 인간 삶의 품위를 온전한 평화의 계획 안에서 실현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가진 탐욕과 교만, 부정과 불의로 말미암은 폭력적 양상은 우리 인류 역사 속에서 전쟁을 비롯하여 여러 비극적 현실을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평화의 길을 걷기 위해 가정과 이웃·직장·학교 등을 시작으로 모든 무관심의 현실을 연민의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기를 권합니다. 또한 성령께 깊이 기도하며 주님께 청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이제 이러한 모든 섭리의 현실은 성령과 함께 성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체적인 다가가기’를 실천하는 도구이길 요청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본적인 핵인 가정에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니 가정이 이 핵심적이고도 필수 불가결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온전히 설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평화는 소중한 선(善)입니다. 평화는 우리 희망의 대상이고 온 인류의 열망입니다. 평화를 향한 희망은 실존적 긴장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의 자세입니다. 이 덕분에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현재라면, 그리고 이 목표를 확신할 수 있다면, 또한 이 목표가 힘든 여정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것이라면 우리는 온갖 어려움 안에서도 현재를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희망은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장애들이 있을 때조차도 우리가 여정을 시작하게 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덕목입니다. 매 순간 우리 교회가 말씀과 성체의 신비를 통해 더욱더 성장하는 이 희망 안에서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제주교구장 문창우 비오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