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부담될까 염려하는 사람 많아... 타인 위해 죽어야하는 상황 초래할수도
미국 뉴욕관구 록빌센터교구의 윌리엄 F. 머피 주교가 호스피스센터에서 환자를 축복하고 있다. OSV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8명 이상이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 합법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월 24일 발표한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19세 이상 남녀 1021명 중 82가 조력자살 합법화에 동의했다. 그 이유로는 42가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기 때문’(27.3), ‘죽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19.0)이란 답변이 뒤를 이었다. 신체적 통증을 덜 느끼고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은 죽음’이라 여기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이같은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조력자살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다소 회의적인 반응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대건 안드레아, 한국죽음교육협회 회장) 교수는 “단순히 국민의 82가 조력자살에 찬성한다는 이번 조사 결과에 상당한 의문이 든다”며 “연령대부터 누구의 죽음을 말하는지, 고통 경감에 도움을 주는 호스피스 제도를 인식하면서도 조력자살을 택할지 등 다양한 상황과 대안을 염두에 두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평했다.
서 교수는 “2018년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으로 죽음에 대한 국민 인식이 급변하고 있지만, 정작 ‘좋은 죽음’을 위한 교육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에서 조력자살 합법화가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연명의료결정제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결정할 수 있는 제도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국민은 271만 9185명이다. 그 수가 갈수록 늘면서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인식은 보편화되는 반면, 이 제도를 언제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등 관련 정보는 적절히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한 노인으로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으니 안락사를 시켜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 있다”고 했다. 임종 과정에서 무의미한 치료를 방지해 고통을 덜어주는 제도를 오해한 대표적 사례다.
이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교회는 ‘생의 말기와 연명 의료’ 특강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오석준 신부는 “조력자살을 지지하는 이들은 죽음에도 ‘자기결정권’을 존중해달라고 하지만, 실제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까 염려하는 이들도 많다”며 “결국 이는 ‘존엄한 죽음’이라 할 수 없고 타인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비참한 상황을 초래하기에 교회적 시선으로 고통과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가족해체현상이 높아진 오늘날, 우리나라 연명의료결정제는 고독사 가능성이 높은 무연고자에겐 적용되지 않는 한계를 갖고 있고, 호스피스 기관 또한 그 수가 매우 부족하다”며 “외국 사례들처럼 호스피스 운영의 주체 또한 종교와 사회복지단체로 넓혀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