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5차 투표에서 선거인단 추기경 115명의 3분의 2인 77표 넘어 선출
[앵커] 13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콘클라베를 통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지 1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당시 콘클라베는 어떻게 진행됐고 참석 추기경들은 어떤 이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했을까요?
2013년 3월 12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콘클라베를 교황이 직접 집필한 자서전을 통해 돌아봤습니다.
서종빈 기자입니다.
2013년 3월 12~13 제266대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OSV
[기자] 2013년 3월 12일 오전. 시스티나 성당.
1차 투표는 추기경들이 서로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표를 분산시키는 관행에 따라 ‘예의 투표’가 진행됐습니다.
다음날 13일 오전 진행된 2차와 3차 투표에서 교황의 본명인 베르골료 추기경의 표는 조금씩 늘었습니다.
한 남미 추기경이 “발코니에서 할 연설문 준비 여부”를 물었습니다.
유럽의 추기경들은 자신들의 식탁에 자리를 하나 비워놓고 교황을 앉힌 뒤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2013년 3월 12~13일 열린 콘클라베에서 추기경이 투표하기 위해 줄 서 있다. OSV
13일 오후 4차 투표에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69표를 얻었고 정족수 115명 가운데 3분의 2인 77표를 넘지 못해 곧이어 5차 투표가 실시됐습니다.
교황은 당시 자신의 이름이 77번째로 호명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와 정확히 몇 표를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회상했습니다.
브라질 우메스 추기경이 다가와 포옹하며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그때 자신의 교황명으로 ‘프란치스코’를 떠올렸다고 밝혔습니다.
교황 반지 대신 주교 서품 때 반지를 끼고 빨간 신발 대신 신던 신발을 신고 발코니로 가 첫 교황 강복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3월 13일 교황 선출후 처음으로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로 나와 첫 교황 강복을 하고 있다. OSV
이어 리무진을 타지 않고 추기경단 이동 버스를 함께 타고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 콘클라베 참석 추기경단과 저녁 식사를 할 때 교황은 이렇게 건배사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시기를!”
교황직의 무거운 책임을 자신에게 지운 것에 대한 위트 있는 유머였습니다.
다음날인 14일, 교황의 첫 일정은 로마 성모 대성전에 가 성모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모 신심’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직을 수행하는 핵심적인 영적 토대입니다.
CPBC 서종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