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에서도 희망과 확신으로 연대하여 어려움 극복할 때"
△ 2024년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에서 강론 중인 정순택 대주교
4월 20일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부활 메시지를 발표했다.
정 대주교는 예수님의 부활은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 아닌 그저 ‘빈 무덤’의 표상을 통해서였다며, 실패의 좌절과 슬픔 속에 주저앉아 있는 이들 곁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조용히 다가오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온유한 승리이며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치유를 선사하는 구원의 신비”라고 전했다.
이어 전 세계적인 군사적 갈등과 분쟁, 전쟁의 아픔, 질병과 빈곤, 기후 위기, 경제적 위기 속에서 어떤 이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과연 어디에 계시는지 묻는다고 했다.
정 대주교는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시련을 겪는 우리 곁에 신비로이 현존하신다는 믿음과 희망”이라고 답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고통을 당장 마술처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지만 주님께서는 인류의 고통과 함께 하시며 이 세상을 구원하고 계심을 믿는다”고 말했다.
덧붙여 “최근 우리가 겪은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단순히 정치적 변화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며,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의 어려움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희망을 품고 확신 속에 연대한다면 이 난관 또한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부활 체험’을 통해 삶의 기대와 희망을 상실한 이들에게, 또 삶의 참다운 가치가 실종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가 이 희망의 복음을 전하자고 당부했다.
다음은 정순택 대주교 부활 메시지 전문.
2025 부활 메시지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기쁨이 온 세상 모든 이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특별히 분쟁과 전쟁으로 불의와 억압, 분열과 소외의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참 평화와 위로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2025년 ‘희망의 순례자’ 희년에 주님의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이 희년에 맞이하는 부활은 더욱 큰 기쁨과 깊은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특히 희망에 관하여 묵상하게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요란한 사건으로 보도하지 않습니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서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식의 부활 발현 이야기는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저 ‘빈 무덤’의 표상을 통해서, 실패의 좌절과 슬픔 속에 주저앉아 있는 이들 곁에 조용히 다가오십니다. 그것은 온유한 승리이며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치유를 선사하는 구원의 신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별과 상실의 슬픔 속에 울고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그 이름을 불러주시며 당신 현존을 드러내십니다.(요한 20,11-18 참조) 이렇듯, 지금 삶의 온갖 시련으로 아파하고 절망하는 사람들 옆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조용히 현존하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떠나보낸 실망 속에 침통한 마음으로 엠마오를 향해 가던 제자들의 마음을 당신 말씀으로 뜨겁게 타오르게 해주십니다.(루카 24,13-35 참조) 이렇게, 지금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인생 여정에서 온갖 실패와 실망을 겪으며 힘겹게 걸어가는 우리 곁에서 함께 걸으십니다. 또한 말씀과 성찬의 나눔을 통해 우리의 닫혔던 눈을 열어주시고 우리의 마음이 벅차오르게 해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숨어서 문을 잠그고 무서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다가와 평화의 인사를 전해주십니다.(요한 20,19-23 참조) 또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어부들에게 나타나시어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십니다.(요한 21,1-14 참조) 이는, 그분께서 사회 안의 여러 분열과 갈등의 긴장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참 평화를 선사하시고, 불안과 불신의 밤을 지새우며 헛수고에 지쳐버린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힘을 주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군사적 갈등과 긴장 속에서 분쟁과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세상을 보며, 또 빈곤과 질병의 세계적 고통과 전 지구적인 극심한 기후 위기, 그리고 사회 공동체의 분열과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어떤 이들은 묻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과연 어디에 계시느냐고 말입니다. 그분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왜 세상의 어둠은 변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시련 속의 우리 곁에 신비로이 현존하신다는 믿음과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현실적인 고통을 당장에 없애주거나 마술 같은 모습으로 해결책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 부활의 신비를 지금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인류의 고통과 함께하시며 이 세상을 구원하고 계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로마 5,3-4)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체험하는 것은 바로 희망을 통해서입니다. 시련 속의 인내와 수양을 통해서 우리는 이 희망을 다져갑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희망입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최근 우리 사회는 희망이 위협받는 듯한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계엄 선포로 시작된 깊은 혼돈과 정치적 혼란은 국회의 계엄 해제 선언,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의 과정을 이어가면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도 통합보다는 정파적 갈등과 상호 비난이 계속되며 분열의 고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우리 국민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고통 속에서도 선명한 시민의식으로 연대를 통해 희망을 일궈 나가는 여정에 한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어둠을 넘어서는 희망과 확신입니다.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단순히 정치적 변화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의 어려움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희망을 품고 확신 속에 연대한다면, 이 난관 또한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희망의 위대함에 새롭게 눈떠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강한 확신, 그래서 현실의 불의와 질곡을 뛰어넘는 위대한 복음의 비전, 곧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지금 선포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를 실망케 하고 좌절시키는 여러 사건과 상황 속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의 제목처럼, 결코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 오늘의 부활 체험은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삶의 기대와 희망을 상실한 이들에게, 또 삶의 참다운 가치가 실종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는 이 희망의 복음을 전합니다. 이제 하느님의 약속을 향해 온 인류가 ‘함께 걸어가는 길’(시노드)에서 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이 희년 동안, 우리는 인류의 여정에서 희망의 용감한 증인, 곧 하느님 자비의 선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부활의 신비를 전하는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모든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로마 15,13)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께서 힘든 풍랑을 헤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청하며, 주님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