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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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위한 도시락 봉사, 25년간 지속된 사랑의 실천

2000년부터 매주 목요일 도시락 제공케이크 봉사·머리 손질 등 다양한 활동국경·세대 초월, 이웃 사랑 위해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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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본오동본당 빈첸시오회 회원들이 갓 지은 밥을 퍼서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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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네 마음과 목숨과 힘,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루카 10,25-28 참조)

매주 목요일 성당 울타리 넘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웃 사랑’을 실천해온 이들이 있다. 수원교구 본오동본당(주임 이동춘 신부)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들이다. 이들은 지역 노숙인·어르신·다문화 가정 어린이 등 지역 사회와 오랜 세월 사랑의 동행을 이어오고 있다.

부활 시기 마지막 날이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을 기념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아 사도들처럼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이들의 현장에 동행했다. 2000년 본당 빈첸시오회(회장 전진구) 설립 이래 25년째 이어지는 노숙인 대상 도시락 봉사 풍경이다. 지난해 6월은 주회합 1000회를 맞았다.

이른 아침부터 성당 주방에서 밥 짓는 냄새가 솔솔 피어올랐다. 한쪽에는 김치 냉장고 3대에 가득 찬 직접 담근 김장김치와 쌀 10포대가 쌓여있다. 모두 지역민들에게 전해질 음식재료들이다. 회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음식재료들을 실어 날랐다.

빈첸시오회 회원들이 정성스레 쌀을 씻어 지은 밥과 쌀뜨물로 만든 카레, 각종 밑반찬이 인근 노숙인들 앞에 놓이는 것이다. 매주 이어지는 사랑으로 노숙인들은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있다. 기자도 거들었다. 검은 봉지에 수저와 젓가락·컵라면을 넣어 옆 봉사자에게 전하면 김이 나는 따뜻한 도시락을 동봉하는 모습이 매우 체계적이다. 오랫동안 맞춰온 호흡 덕에 이웃에게 전해질 도시락 세트가 뚝딱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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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이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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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인부터 장애아들과 엄마,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살고 있는 외국인 신자까지 봉사에 나선 회원들도 다양하다. 타본당 신자, 본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를 통해 지원받은 이가 자신이 받은 사랑을 더 어려운 이와 나누고자 참여하고 있다. 국경과 나이 구분 없이 20여 명에 이르는 이가 나눔을 위해 합을 맞춰오고 있다.

이날 준비된 도시락만 100인분. 빈첸시오회 회원들은 노숙인들이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한 끼를 해결하며 하루만이라도 사랑을 느끼도록 하고 있다. 도시락을 나누기 전에 전진구(미카엘) 회장이 잠시 은행에 다녀오기 위해 나선다. 도시락과 함께 1000원을 동봉해 배부하기 위해서다. 작은 금액이라도 그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이 돈으로 술과 담배를 사는 이도 있지만, 차곡차곡 모아 5~6만 원씩 다시 가져오는 이들이 있어요. 으레 뭐든 받으려고만 하는 게 아니라 보은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다시 선행을 베풉니다. 우리에겐 또 다른 보람이죠.”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자 성당 앞 공원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맛있게 드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활기찬 인사와 함께 노숙인들에게 정성이 담긴 도시락이 쥐어졌다. 빈첸시오회 회원들은 노숙인들이 도시락을 받기 위해 길을 건너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봉까지 들고 지도했다.

안전 지도를 맡은 정길우(베드로)씨는 “노숙인 어르신들이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뿌듯하다”며 “내가 다 건강해지는 기분이라 100살까지 오래 살려고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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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본오동본당 빈첸시오회 전진구 회장이 노숙인을 상대로 미용 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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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이 인근에서 자리 잡고 식사하는 동안, 전진구 회장은 홀로 분주해졌다. 그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기 위해 자리를 펴고 장비를 준비하는 것이다. 전 회장은 “이전엔 미용사가 봉사자로 참여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직접 하게 됐다”며 “예쁘게 손질해드리고 싶어 1년 동안 미용학원도 다녔다”고 말했다.

“형님, 저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오래 봐온 사이여서 그런지 노숙인들도 전 회장을 ‘형’‘형님’이라 불렀다. “너무 짧게 자르면 사람들이 범죄자로 오해하니까 조금만 잘라주세요”라는 농담도 오간다.

10년 동안 이 공원에서 노숙했다는 A씨는 “미용을 하려면 아무리 싼 데도 만 원씩은 든다”며 “때마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챙겨놨다가 주셔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A씨는 정부 지원으로 고시원에 살 수 있게 된 뒤부터 긴 노숙생활을 청산했다. 다시 건강한 생활을 살아가는 데 본당 빈첸시오회의 연대가 컸다. 정성 어린 음식으로 건강을 챙겨주는 것을 넘어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이들의 형제가 돼주고 있다.

이날도 노숙인들은 봉사자들에게 다친 곳이나 아픈 곳을 보여주며 하소연을 했다. 예전에 알던 봉사자가 안 보이면 찾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 받은 빵과 우유를 오히려 봉사자들에게 전하는 이도 있었다. 쌀봉지를 챙겨 들고온 이도 있다. 그는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쌀을 혼자 다 못 먹는다”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고 싶다”면서 본당 빈첸시오회에 전달했다.

10년 동안 도시락 봉사에 참여한 김순임(유스티나)씨는 “봉사할 때면 마음이 너무 즐겁고 좋아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잔뜩 얻어 가는 기분”이라며 “오랫동안 알았던 다른 봉사자들과 우리 형제자매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는 것이 일상의 행복이 됐다”고 말했다.

도시락은 1시간도 안 돼 동났다. 구슬땀을 흘리는 전 회장은 공원을 둘러보며, 혹여 마음 편히 식사하지 못하는 이는 없는지 살피고 쓰레기도 주웠다. 전 회장은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공원에 노숙인이 몰리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타본당에서도 오랜 봉사의 비결을 묻고 갈 정도로 빈첸시오회 활동은 본당의 자랑이 됐다”며 “다음엔 악기연주도 배워 성당 앞 공간을 가난한 이와 함께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랑의 현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빈첸시오회 회원들의 봉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겨둔 도시락을 지역 어르신에게 전하고자 양로원으로 향한 것이다. 다른 날에는 요양병원 미용 봉사, 프랜차이즈 제빵 기업이 기부한 케이크를 이웃에게 전하는 사랑의 케이크 봉사도 하고 있다. 다문화 저소득 가정 아동과 지역아동센터에 맛있는 케이크를 전달하는 활동이다. 회원들은 계속 사랑 나눔의 시간을 축적해가겠다고 밝혔다.

“사랑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을 실현하는 데 부족하다 싶은 것이 생기면 곧장 하느님께서 채워 주시죠. 힘닿는 한 죽을 때까지 이웃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다른 회원들도 이 마음은 마찬가지이고요!”(전진구 회장)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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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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