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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성화의 날 특집] ‘사제에게 사제직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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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문을 열며 선포한 2000년 대희년은 교회가 하느님의 구원 신비 안에서 새로운 천년기를 여는 특별한 은총의 해였다. 그해에 서품을 받은 사제들은 회개와 감사, 구원의 의미로 가득한 대희년의 해에 사제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25년이 흐른 2025년 희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희망의 순례자들’을 표어로 선포한 뜻깊은 해에 그들은 다시 한번 희년의 문턱에 서게 됐다. 6월 27일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은경축을 맞은 사제들이 걸어온 25년 여정, 그 순례 이야기에 귀 기울여본다.



■ 류달현 신부, “더 맛있는 빵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죠”


“처음 본당 주임으로 나와보니 본당 신부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행복해하니, 본당 신자분들도 덩달아 행복해하십니다.”


4개월 전, 사제 생활 25년 만에 처음으로 본당 사목을 시작한 류달현(베드로·의정부교구 평내본당 주임) 신부의 첫마디다. 지난 몇 달 동안 본당에서의 생활은 류 신부에게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당부하신 ‘양 냄새 나는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있다”며 “목자가 양과 함께 먹고 자고 뒹굴며 살아야 양 냄새가 나는 것처럼, 신자들에게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모임, 봉사, 청소, 설거지 등 모든 일을 함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제는 먹히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내가 우리 본당 신자들에게 맛있는 빵이 되고 있는지, 복음이 되고 있는지’를 자주 성찰하며 더 맛있는 빵으로 다가가려 한다”고 했다.


‘사제는 먹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프라도 사제회 창설자 앙트완느 슈브리에 신부가 사제직의 이상으로 제시한 ‘생퐁의 도표’에 나오는 말이다. 류 신부는 신학교 1학년 시절, 본당 주임 신부의 거실에서 이를 처음 접했다. 


당시 본당 사제의 권위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던 이 표현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마음속에 오래 남아 프라도 사제회의 가난의 영성에 관심을 두게 했다. 서품을 받고 프라도 사제회에 함께 한 그는 프랑스 프라도 사제회에서 국제 연수 후 한국 프라도 사제회 책임도 맡았다.


류 신부는 일반대학을 다니다 성소의 길을 택했다.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며 하늘에만 계신 줄 알았던 하느님이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박해받는 이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시는 하느님을 알게 되면서 ‘나도 그런 하느님을 전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성소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대희년의 시작과 희망의 희년이 만나는 시점에서 은경축을 맞는 류 신부는 “사제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해주신 많은 신자분께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런 만큼 올해 사제 성화의 날은 “사제의 삶이 주는 크나큰 보람과 행복, 즐거움을 새롭게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제의 성화란 제2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며,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며 따르는 길"이라 여긴다는 류 신부는 “또 사제직을 기쁘고 행복하며 보람 있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힘은 바로 ‘기도’”라고 강조했다. “특별히 성무일도의 모든 시간경을 하루도 빠짐없이 바친다”는 그는 “시간을 성화시키는 시간경 기도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 것이 분주한 매일의 삶 속에서 사제로 살아가는 중심축”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과분하게 받은 사랑과 관심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사제라는 이유로 받았음을 기억합니다. 예수님 때문임을 재삼 깊이 깨닫습니다. 사제로 불러주시고 부족함에도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 조현철 신부, “예수님처럼 살려는 첫 마음 여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예수회)가 2000년 7월 4일, 다섯 명의 동기와 함께 사제품을 받으며 정한 서품 성구다.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한다는 것은 25년이 지나 은경축을 맞은 지금도 여전히 사제로 살아가는 ‘초심’, ‘첫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제 수품을 받을 당시의 마음은 세례를 받았을 때나 예수회에 입회할 때 가졌던 심정과 연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되돌아보면, 결국 ‘잘 살아보자’, ‘제대로 한 번 살아보자’는 다짐이었고, 그것은 곧 예수님처럼 살아가려는 결심이었습니다.”


조 신부는 그런 의미에서 올해 사제 성화의 날이 “예수님의 삶을 좀 더 잘 살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성찰하고 격려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의 25년 사제 생활은 정의·평화·창조보전(JPIC) 활동으로 점철돼 있다. 1970~1980년대 대학 시절 사회 정의에 대한 갈망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세례를 받았고, 이후 ‘세례 때 결심을 어떻게 지속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그를 예수회로 이끌었다. 수도회 입회 후 유기농업에 종사하는 농부들과 교류하며 생태적 관심이 넓어졌고, 생태와 사회 정의가 밀접히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문제의식은 석사·박사 논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여 년간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학자이자 활동가로 생태환경 현장에서 쉼 없이 걸어가는 밑바탕이 됐다. 지난해 교수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녹색연합 공동대표,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 대표, 예수회 사회정의생태위원회 위원장 등 다양한 역할을 통해 JPIC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 신부는 “사목 생활에서 청년들과의 만남이 늘 기쁨이었다”며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복음의 가르침을 나눈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특히 2014년 안식년 동안 쌍용자동차 등 해고 노동자들과의 만남, 탈핵 순례에 함께 한 경험도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된다.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 설립과 9년간의 ‘JPIC 양성학교’ 운영을 통해 JPIC 활동을 구체화해 온 과정 역시 큰 보람으로 여긴다. 다만 “교회 안에서 JPIC 사목이 아직 중심보다는 주변의 관심을 받는 현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조 신부는 후배 사제들에게는 “복음 속 예수님의 삶에서 모델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예수님은 이웃을 위한 삶을 사셨고, 그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오늘의 시대 안에서 남을 위한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제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은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며 “공부와 독서, 집필을 병행하며 현장의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배경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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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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