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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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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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떠나보낸 한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장례를 치른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사별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고, 사람들 앞에서 조차 감정을 숨기지 못해 종종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사람들이 드문 평일 오후 성당에 갔습니다. 그렇게 고요한 성당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조심스레 그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바로 주임신부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이 건넨 한마디는 자매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제 그만 울 때도 되지 않았어요?” 


자매님은 그 말에 북받친 슬픔과 서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서둘러 성당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마도 신부님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자 했던 것일 테지만, 여전히 애도의 한가운데 있는 자매님에게 그 말은 위로가 아닌 또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작년, 사별가족 동반자를 양성하는 ‘모현상실수업’에 함께 참여한 한 수녀님이 털어놓은 이야기입니다. 수도회에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던 한 자매님이 형제님을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수녀님은 자매님을 마주하고 어떻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형제님은 하느님 곁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계실 거예요. 그리고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과부들을 특별히 보살피신다고 하셨잖아요. 앞으로 하느님께서 자매님을 잘 돌보아 주실 거예요.” 


수녀님은 시간이 지나 그 말을 돌이켜보며 고백했습니다. “저는 그 자매님의 상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내뱉었어요. 그게 자매님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만 들으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하고 안타까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마주한 이들을 보면 당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위로의 마음은 가득하지만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종종 준비되지 않은 말과 행동들로 상대방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1코린 13,4)


상실의 고통을 겪는 이가 충분히 울고, 사랑하는 이와의 기억과 감정을 천천히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랑, 그것이 진정한 위로입니다. 그 사람이 회복될 때까지 함께 머물며 침묵과 기도 그리고 동행으로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인 것입니다.


죽음은 신비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마주한 이들에게, 명쾌한 설명이나 조언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그 신비 앞에 머무르고 상실이 불러오는 시간과 감정의 깊이를 공감하고 나누는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에게 어떤 사람으로 다가가고 있습니까? 성급한 조언자입니까? 아니면 조용히 함께 머물러 주는 동반자입니까?



글 _ 허규진 메르쿠리오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복음화3국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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