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전주 전동성당의 십자가의 길 14처 복원 작업을 맡게 되었다. 성당 자체가 문화재급의 역사를 지닌 건물이고, 14처 역시 100년이 넘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중 두 점은 6·25전쟁 당시 파손된 후 여러 차례 비전문가에 의해 수리됐으나 본래의 모습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이렇게 막막한 조건의 복원은 처음이었다. 국내 최고의 성당 미술 복원 전문가라는 자부심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과연 이 작업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깊은 고민 끝에 계약을 보류하고 한 달을 보냈다. 모든 고증 자료를 모으며 원본을 유추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른 뒤, 본당 측으로부터 성당 안에 1년간 아틀리에를 꾸밀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복원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단계는 14처를 아틀리에로 옮긴 뒤, 기존 물감을 벗겨내는 작업이었다. 적합하지 않은 물감 위에 새로 작업을 해 봤자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5개월 이상에 걸친 정밀한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90가량 진행된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자괴감이 밀려왔다. 붓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완성에 가까운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그것은 내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가볍고 지루한 분위기였고, 십자가 위 주님의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 달 넘게 작업을 중단한 채, 서울로 돌아와 ‘잠수 아닌 잠수’를 탔다. 도무지 이 작업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업실 한쪽에 놓인 예수님 조각상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조각상에 손을 얹은 채,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
기도하듯 손끝으로 조각상을 어루만지던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손끝에서 전해졌다. ‘손끝… 손끝….’ 이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무릎을 ‘탁’ 치고 바로 전주로 내려가 다시 작업에 돌입했다.
붓이 아닌 두 가지 색의 물감을 손가락에 묻혀 직접 문지르면서 바르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보름이 지나니 14처 각 처마다 색채의 깊이와 역동성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작업 중인 14처를 지켜보던 주위의 수녀님들도 변화된 작품에 감탄을 연발하셨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내가 지닌 능력의 한계를 주님께서 채워주셨다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는 순간이었다.
글 _ 고승용 (루카) 성미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