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은이가 이 세상에 있었다면 올해도 또래들과 즐겁게 생일잔치를 하지 않았을까요?”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로 하늘의 별이 된 고(故) 이상은 씨(당시 23세)를 기억하며, 그를 위한 조용한 생일잔치가 열렸다. 천주교 신자가 되기를 꿈꾸던 딸을 기리기 위해, 강선이(로즈마리)·이성환(요한 마르코) 부부는 매년 특별한 방식으로 딸의 생일을 기념하고 있다.
지난 6월 27일, 서울 대현동 ‘청년밥상 문간’ 이대점. 부부는 딸의 생일을 이틀 앞두고 또래 청년들에게 따뜻한 김치찌개를 무료로 대접하며 생일상을 차렸다.
상은 씨의 생일이 다가올 때마다 이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을 안고 있던 부부는 3년 전, 글라렛 선교 수도회 이문수(가브리엘) 신부가 청년들의 한 끼를 위해 설립한 청년밥상 문간의 이야기를 접했다.
청년밥상의 취지에 공감한 부부는 2023년부터 딸의 생일을 즈음해 청년 159명에게 점심을 대접하는 생일잔치를 시작했다. 159명은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숫자다. 2024년부터는 인원수 제한 없이 문간을 찾는 이 모두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있다.
점심시간이 채 되기 전부터 청년들과 시민들이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문간 입구에는 마치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듯한 상은 씨의 환한 미소가 담긴 사진이 걸려 손님을 반겼다. 강 씨 부부는 찾아온 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전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정오를 넘기자 식당은 이내 북적이기 시작했다.
잔칫상으로 준비된 김치찌개는 소박하지만 넉넉했다. 상은 씨의 부모뿐 아니라 다른 유가족들도 자원봉사자로 함께하며, 손님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식탁을 수시로 살폈다. 식사 후에는 생일 축하식이 이어졌다. 강 씨 부부는 케이크의 촛불을 함께 불며, 딸의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마음으로 축하했다.
강 씨는 “상은이가 살아 있었더라면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게 생일을 보냈을 것"이라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상은이 또래의 청년들에게 든든한 밥 한 끼를 챙겨주면 그만큼 의미도 크고 딸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지 않을까 싶어 생일잔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날의 조촐한 식사 자리는 상은 씨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를 넘어, 시민들이 10·29 이태원 참사를 다시 떠올리고 함께 기억하는 연대의 시간이었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부부의 마음에 공감하는 시민과 수도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에서 활동하는 이상민 씨는 “청년 혹은 일반 시민들도 찾아와 상은 씨의 사진을 직접 보며 기억에서 잊혀가던 참사를 다시 기억하고 연대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가소비녀회 정 대철 베드로 수녀는 “이렇게 상은 씨를 기억하며 생일을 함께 기뻐하는 것처럼, 참사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이 하늘나라에서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거예요”라며 부부의 손을 잡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