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간병하며 생겨 꾸려... 길에 쓰러진 후 희귀 질환 진단 받아
간암과 싸우며 화가로 살아왔던 남편이 남긴 재산이라곤 평생 그려온 그림뿐이다.
“남편은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다 아들의 간 이식을 받고 다시 붓을 들었어요.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간병은 끝난 줄 알았는데?. 아들마저 암에 걸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어머니 이상희씨)
경기 안양시 만안구. 10평 남짓한 집에 들어서자, 먼지 앉은 수채화 작품이 발 디딜 틈 없이 쌓여 있다. 옷장 안에도 수채화 작품이 빼곡히 들어찼다. 최근 나경환 신부의 도움으로 수원교구의 한 성당에서 한 달간 무료로 회고전을 열었지만 작품 판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가난한 화가이자 암환자였던 고 천기원(안토니오)씨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아내 이상희(안젤라, 74, 수원교구 비산동본당)씨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는 남편을 곁에서 간호하고 지지했다. 가난한 화가의 아내로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두 아들을 키워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외롭게 자란 남편의 그림 속 고향 풍경은 쓸쓸하고 애잔했다. 남편은 ‘아버지를 살려드리겠다’며 수술대에 오른 아들의 간을 이식받고도 5년 후 야속하게 세상을 떠났다.
54일 기도를 통해 인생의 밑바닥을 딛고 간병 일을 시작했다. 환자를 돌보는 일에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더 깊은 밑바닥이 일상을 덮쳤다.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해준 둘째 아들이 10년 뒤 혈액암에 걸렸다. 아들의 연이은 항암치료와 수술이 이어지면서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었고, 이씨는 간병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밥 한끼 사 먹는 일도 사치였다. 집에서 아들이 남긴 밥을 싸 와 병원 냉동실에 넣어 두고 꺼내 먹었다.
몸이 회복되고 있는 막내 아들은 배달 일을 시작했지만, 세 사람의 생활비·관리비·병원비에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던 중 아파트 입구 차단봉에 부딪혀 치아 3개가 부러졌다.
어머니 이상희씨는 평생 남편과 두 아들을 간병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지난해 12월, 20년 가까이 해오던 간병 일을 끝냈다. 길에서 쓰러져 119 구급차에 실려 간 병원에서 이석증과 함께 ‘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이라는 희귀 질환 진단을 받았다.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됐다. 연령회 등 4개 단체에 가입해 성당 봉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도와준 이들에게 고마워서다.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는 대출을 받아 분양받았고, 원금에 대한 이자가 월 60만 원에 달한다. 집안 온도는 30도를 넘지만, 맨몸으로 더위를 견디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후견인 : 수원교구 나경환 신부 (성사전담, 전 교구 가톨릭미술가회 담당)
“고 천기원 화백은 하느님 앞에 갈 때까지 그림만 그리며 욕심 없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간병인으로 벌이를 하던 미망인이 생계가 끊겼고, 암 투병 중인 아들을 간병하며 신앙 안에 인내로 지내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금계좌 (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이상희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7월 20일부터 26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3)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