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어느 날. 매우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장폐색증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제가 앓고 있는 장폐색증은 특이한 경우라 완전히 치료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고, 가끔 발병하면 그때그때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폐색증이 나타나 수없이 구토를 반복하고 다른 때보다 더 심해지는 증상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아 119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처치가 시작되고, 소장과 대장이 다 막혀 CT를 찍고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조영제를 투여하고 몇 분이 지났을까요? 의사와 간호사들의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신장 기능이 완전히 다운되어 긴급히 투석해야 하고 O형 혈액이 당장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AB형, 세 아이는 모두 B형이라 제게 혈액을 줄 가족은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본당이었습니다. 소공동체 회장님께 사정을 알리자, 곧바로 신부님의 긴급 공지가 내려져 청년부터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헌혈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모두 한마음, 한 형제라는 말씀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몸의 모든 기능은 활동을 멈췄고, 겨우 희미한 의식만 남아있는 채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투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차디찬 혈액이 온 몸으로 돌기 시작하자 밀려오는 추위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괴로워 이불을 몇 겹씩 덮었고, 온몸은 급속도로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제 차디찬 몸을 크신 팔로 껴안아 주시는 어머니의 따뜻함이 느껴지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자, 구원자이신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라는 커다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런 마음이 든 것은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가던 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순간 누군가 “구역장님!”하는 소리가 들려와 살며시 눈을 떠보니 함께 봉사하던 반장님이 제 머리맡에 서 있다가 재빠르게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성당에서는 생미사가 봉헌되어 신부님과 신자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보호자이신 주님의 자비와 도우심으로, 모든 분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저는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기검진과 저염식단을 평생 해야 하는 어려움은 남아있지만, 저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드리고 어려울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희망하며, 새 생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또한 배곧성당 주임신부님과 교우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 _ 송정숙 로사(수원교구 제2대리구 배곧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