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삶을 바쳐 하느님 백성, 특별히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발을 몸소 씻어주던 목자. 서울대교구 유경촌(티모테오) 주교가 8월 15일 오전 0시 28분 하느님 품에 안겼다. 향년 63세.
유 주교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가족과 사제, 수도자들의 임종 기도 속에 평안히 하느님 품에 안겼다. 임종에 앞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 옆에서 더 함께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함께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는 뜻을 전했다.
서울대교구는 유 주교 선종 당일 ‘빈소를 여는 미사’를 시작으로 4일장을 치렀으며, 18일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봉헌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가 주례한 장례미사에는 한국 주교단과 서울대교구 사제단, 유가족, 신자 등 3600여 명이 운집했다. 참례자 수가 성당 수용인원 1000명을 훌쩍 넘어, 성당에 입장하지 못한 신자들은 마당에 선 채 미사를 봉헌하며 유 주교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유 주교와 함께 주교 서품을 받은 정 대주교는 강론 중 “유 주교님의 존재는 제게 너무도 큰 의지가 됐고 큰 힘이었다”고 회고하며, “유 주교님은 교회가 사회의 아픔과 소외된 이웃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언하셨다”고 전했다.
특히 매주 명동밥집에서 봉사하던 유 주교를 떠올리며 “손수 음식을 나누고 설거지를 하며 이웃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걸으셨으며, 다양한 봉사의 기회에 여느 다른 봉사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임하시기를 원하셨고, 늘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으셨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기 위해 거리의 농성 현장으로, 외곽의 선교지로도 주저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셨다”며 “유주교님의 사목 여정은 말로만 전하는 사랑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된 증언이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레오 14세 교황의 메시지가 담긴 조전을 통해, “레오 14세 성하께서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유경촌 주교님의 선종을 접하시고 깊은 슬픔에 잠기셨다”며 “유경촌 주교님의 주교 직무 특히 그분의 겸손한 삶의 모범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헌신을 감사히 기억하며, 선종하신 유 주교님의 영혼을 좋은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자비하심에 맡긴다”고 전했다. 조전은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가 대독했다.
장례미사 후 주교단과 사제단, 수많은 신자의 마지막 인사를 받으며 명동대성당을 떠난 유 주교의 유해는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성직자묘역에 안장됐다.
유 주교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0년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 1984년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를 졸업했다. 유 주교는 사제가 되기 전인 1988년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1992년 사제품을 받고 프랑크푸르트의 상트게오르겐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99년 목5동본당 보좌로 사목을 시작한 유 주교는 같은 해 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로 임명됐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장을 역임하며 교구 사목 행정의 전문화와 효율화에 크게 기여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유 주교는 이듬해 2월 5일 주교로 서품됐다. 이후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대리로 사회적 약자 보호, 환경 보전, 정의와 평화 실현을 위해 헌신해왔다. 주교회의에서는 매스컴위원회 위원장,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교회의 사회적 사명을 위해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