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과 선고, 참 불편함을 주는 단어입니다. 반복되는 한숨과 후회만큼이나 책임져야 하는 현실은 엄중합니다. 가족분들에게조차 거부당해야 하는 수치심과 위축됨, 기본적인 욕구조차 제한받는 수용 생활, 출소 후 기다리는 경력 단절과 파괴. 저 역시 호기롭게 응답한 교정사목이지만, 코너에 몰린 인간의 실존을 진정성 있게 마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30년 이상의 구형을 받고, 잿빛으로 변해버린 형제님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수용자는 가정에서 책임을 맡아온 이들입니다. 구형과 선고를 앞둔 시점에 가족이 있는 수용자일수록 “가족을 실망시켰다”는 강한 자기 비난과 수치심을 겪으며, 자아존중감의 깊은 훼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결국 수용자 개인의 심리적 불안을 넘어서, 수용자분과 그 가족분들이 복합적인 위기에 빠지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선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역할 붕괴’로 연결됩니다. 부모, 배우자, 가장, 직장인 등으로 살아온 사회적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가정에서의 좋았던 모습, 직장에서의 자부심, 자녀에게 든든했던 존재로서의 ‘과거의 삶 전체가 일방적으로 부정’ 당하는 현실은 슬픔이자 죄의 무게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잘못이 고스란히 가족의 고통으로 전가되어, 배우자는 이혼을 고민하고, 자녀들은 정서적 혼란 속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이혼 통보를 받거나 자녀 양육권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구형과 선고는 한 사람에게 내려지지만, 결국 그 여진은 가족 전체로 번져 나갑니다.
한편으로, 사회학적으로도 이들은 낙인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아가게 됩니다. 출소 후 취업, 인간관계 등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현실적 아찔함이 밀려오게 됩니다. 그로 인해 다시는 사회의 반듯한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걱정 속에 무기력이 밀려오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구형과 선고를 앞둔 시기는 단순한 법적 절차를 넘어, 인간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시간입니다. 이 시기 교정 사목자는 정답을 제시하려는 조급함보다는, 혼란 가운데 있을 그들에게 조용히 있어 주고자 합니다. 쉽지 않은 물음들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 주기적으로 찾아갑니다. 그분들 곁에 머문다는 건, 그 가능성을 믿어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믿음 하나가, 다시 삶을 붙잡게 하는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시편 34,19)
글 _ 유정수 루카 신부(수원교구 교정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