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矯正, Correction)’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고침’입니다. 교도소 안의 하루는 매우 이른 아침에 시작되며, 출역(出役)이라는 이름으로 노역(교도작업)을 하게 됩니다. 사실 형의 종류(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수형자는 징역(자유형+노역)을 살아갑니다. 그 일상은 통제, 고립, 반복입니다. 외부 세계와는 철저히 단절된 채, 폐쇄적 구조 안에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잊힌 인간’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많은 이는 교도소를 ‘혼자만의 조용한 반성의 장소’로 상상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대다수 수형자는 6명에서 많게는 15명이 함께 생활하는 혼거실(混居室)에서 지냅니다. 생각보다 정말 좁고 열악합니다. 범죄의 경중도, 사회적 배경도, 성격도, 기질도, 나이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심지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불편감과 긴장감을 낳습니다. 물론 교정 당국에서도 분류 처우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특별히 과밀 수용 문제는 교정·교화를 더욱 어렵게 합니다. 현재 교정시설 평균 수용률은 130이며, 높은 곳은 150가 넘어가는 현실입니다. 밤이면 어깨를 맞대며 잠을 청해야 합니다. 혼거실의 어려움은 단순히 공간의 부족만이 아닙니다. 지속된 감정의 갈등, 묵인된 위계와 패거리 문화 속의 보이지 않는 폭력, 질서 교란, 가치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것이 누적되면 위협, 폭행, 고립으로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수용자들은 입실 거부나,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독거실(獨居室)을 요구하다가 징벌위원회에 회부되어, 징벌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보다 강화된 ‘열등 처우의 원칙’(범죄자는 자유인의 최저 수준 이하의 처우)을 주장하며 응보적 정의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과밀한 환경 속에서는 억제와 단순한 적응만이 우선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불필요한 방어 기제와 적개심이 쌓이고, 왜곡된 관계 방식이 내면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교정 당국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점차 그 환경과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다양한 활동과 지원 사업을 통해 부족한 환경에 매몰되지 않도록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교정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사회복귀를 위한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6)
글 _ 유정수 루카 신부(수원교구 교정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