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뭐예요?”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질문이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한국은 자기보고형 성격유형 검사인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나라로, 검색량은 미국보다 무려 20배 많다. 특히 MZ세대에게 MBTI를 비롯해 ‘에겐남·테토남 테스트’, ‘애착유형 검사’ 등 성격 진단 콘텐츠는 자기소개와 관계 형성의 기본 언어처럼 쓰인다.
이러한 성격유형 검사는 교회의 상담·사목 현장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신앙인에게 자기 인식은 곧 영적 성찰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도구가 영적 성숙을 돕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신앙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가 성격검사 세태
MBTI를 비롯한 여타의 성격검사 도구들이 국내에 보급된 것은 1990년대다. MBTI가 한국 사회에 처음 소개될 때 가톨릭교회는 중요한 창구였다. 미국에서 MBTI를 접한 김정택 신부(대건 안드레아·예수회) 등 두 수도자가 MBTI 검사지를 한국판으로 표준화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MBTI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심리 상담이나 인간 계발 분야 전문가 집단에 먼저 알려졌다. 교회는 초기부터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다.
오늘날 MBTI 같은 성격유형 검사가 대중화되고 하나의 사회 현상처럼 자리 잡은 배경에 대해 심리학자와 상담가들은 ‘현대인의 자기 이해 욕구’를 꼽는다. 수지 에니어그램 강사 이수연(세실리아) 씨는 이런 현상을 몇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우선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이동하는 사회적 현상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의식이 중요해진 것으로 풀이했다. 자기 정체성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럼 너는?’이라고 타인에게 묻게 된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인터넷 접근성과 유행에 민감한 한국 사회 특성이 더해졌고, 마치 역술인을 찾아 운명을 묻듯 성격검사로 답을 얻으려는 문화적 습관도 반영된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심리학을 전공한 한 사제는 “한국에서 과열된 이유에는 자기 내면을 주체적으로 성찰하는 힘이 약화한 현실도 있다”며 “과거에는 독서, 사색, 대화로 자신을 이해했지만, 지금은 빠르고 간편한 도구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나를 알 때 신앙은 깊어진다
‘자신을 찾고, 나를 안다’는 것은 신앙 여정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전문가들은 “자기를 아는 것은 곧 하느님을 향한 영적 성숙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이수연 씨는 ‘자신에 대해 알기’를 권했던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자아의 각성’을 강조한 성공회 신학자 이블린 언더힐을 언급하며 “자기를 아는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고, 수직적으로는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상담 심리 관계자도 “창세기 3장 9절의 ‘너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마음, 어떤 상태로, 어디에서 어떻게 있느냐’고 묻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신앙 성장에서 가려는 목적지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위치에 따라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격유형 검사나 자가 성격검사는 기도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등 도움이 될 수 있다. 막연히 청하기보다 자기 성향과 내면 성찰을 바탕으로 청한다면 기도의 지향과 내용이 달라지고, 더 풍성한 은총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곧 ‘관계의 문제’라는 점에서도 자기 인식은 중요하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관계에 임하는 것이 모든 관계의 성장을 위해 훨씬 좋은 모습인데,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인 신앙 영적 여정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걸림돌은 디딤돌
유념할 것은 검사 결과를 절대적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절대적인 것으로 과신하거나 모든 경험을 검사 결과의 틀 안에 가두려는 것은 영적 성장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심리적 성숙에도 걸림돌이 된다.
결과가 특정 유형의 설명을 제공해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라는 존재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실제 얼마 전 한 구직 사이트는 MBTI 특정 유형을 지원 자격에서 배제해 논란을 빚었다. 이처럼 결과를 정답으로 과신하거나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가능성을 제한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영적 성장의 측면에서는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완성된다’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명제를 강조한다.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의 본성을 성장시키고 완성하기 때문에, 개인의 기질이나 성향이 삶을 절대적으로 좌우하지 않고 신앙의 영적 여정 안에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심리검사 도구들이 이런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거나 포기하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검사 결과는 나의 한 부분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겸허하고 담대하게 수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자가 성격검사 도구는 학문적 연구와 통계, 근거들에 기초한 것이기에 섣불리 사용하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수연 씨는 “교회가 이런 사회적 현상의 본질을 읽고, 신자들의 관심과 필요를 이해하면서 심층적으로 더 깊은 영성을 담은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앙인들이 성격유형 검사를 ‘하느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성찰’로 이어가도록 요청한다. 빠르고 손쉬운 자기 이해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하는 ‘그리스도 안의 나’를 바라볼 때, 성격유형 검사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신앙 성숙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