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20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면서도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했어요. 항공권조차 살 수 없을 만큼 힘들게 살았는데, 저도 가난해서 도와줄 수 없어 미안했어요. 이렇게 말도 못 하는 상태로 돌아온 언니를 보면 가슴이 미어져요.”
신선민(51) 씨는 20년 만에 재회한 언니 신현주(52) 씨를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신현주 씨는 지난해 11월 뉴질랜드에서 원인 불명의 뇌내출혈로 쓰러졌다. 발견 후 응급수술을 받아 목숨은 건졌지만 자가 호흡조차 어려울 만큼 건강은 악화된 상태였다. 이후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지만, 미등록 외국인 신분인 탓에 곧장 추방됐다. 그리워하던 한국 땅을 그렇게 다시 밟을 수 있었다.
뇌내출혈의 후유증은 지금도 신 씨를 괴롭히고 있다. 우측 편마비와 실어증이 동반돼 일상생활은 물론 의사소통도 어려운 상태다. 오로지 표정과 고개 끄덕임으로 간단한 의사 표현만 가능하다.
상태는 악화되고 있다. 국내로 들어온 뒤 발생한 두피 결손이 이마의 뼈를 녹이며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피부 결손은 계속해서 퍼지고 있어 염증이 뇌까지 전이될 위험이 있다. 담당 의료진은 “수술이 시급해 손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며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수술을 받는 동안 신 씨를 돌봐줄 보호자가 없어 급한 수술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신 씨는 10살 무렵 어머니를 여윈 후 아버지의 재혼으로 큰아버지 가정에 맡겨졌다. 그러나 반복된 폭력과 강제 가사 노동에 시달렸다. 결국 2003년 사진을 배우기 위해 호주로 떠난 신 씨는 이후 뉴질랜드로 건너가 유흥업소에 머물며 숙식을 해결했다. 귀국 당시 한국에서의 주민등록은 이미 말소된 상태였다. 이런 신 씨가 유일하게 기댈 곳은 동생뿐이다.
하지만 동생 신선민 씨도 생산직 공장에서 일하며 경제적으로 어렵다. 배우자 없이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신 씨는 현재 개인회생을 시작해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는 여력도, 언니의 치료 기간에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신 씨는 “급한 치료에 필요한 2주간의 간병인 고용비가 제 월급보다도 많다”며 “심지어 월급의 절반은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본인의 삶도 여유가 없지만 그는 휴일이면 언니를 보기 위해 왕복 6시간을 오간다. 1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언니였지만, 부양을 결심한 이유는 힘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언니가 보여준 변치 않는 사랑 때문이다.
그는 “언니가 어린 시절 공장에서 일해 번 돈으로 저를 위해 책을 사주고, 좋은 게 있으면 모아뒀다가 제게 줬다”며 “언니가 성당에 다니진 않았지만 늘 ‘가족끼리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며, 힘들 때는 하느님을 찾았다”고 회고했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말한 신현주 씨가 ‘삶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따뜻한 사랑이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원목실장 최솔(세베리노) 신부는 “신현주 씨는 주민등록 말소와 가족 해체로 인해 국가와 가족으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치료와 재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