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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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깨어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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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더위는 유난히 혹독했다. 연일 38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에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좁은 땅에서도 남쪽엔 폭우, 북쪽엔 폭염이 들이닥쳐 마치 다른 계절이 교차하는 듯했다. 장마철이라는 이름도 사라진 듯 흔하던 태풍조차 오지 않았다.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며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진다. 잠시 전만 해도 푸르던 하늘이 금세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곧 장대비가 쏟아진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말이 어울린다. 전 세계적으로 가뭄과 홍수가 잇따르니, 지구라는 집을 지키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나는 일상생활 중 하루 한 시간은 건강을 위해 걸으려고 한다. 일정이 많아서 거르는 때도 많다. 지난 7월 어느 날, 찌는 듯한 더위 속 산책에 나섰다. 교구청 주변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달동네 같은 풍경을 이루기는 하나 걷기에는 좋다. 외곽 길이나 서호천변을 걷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흐른다. 


그날 하늘엔 구름이 조금 걸려 있었고, 우산을 챙길지 망설였으나 ‘괜찮겠지’ 하며 빈손으로 나섰다. 그러나 20분쯤 걸었을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곧 양동이로 퍼붓듯 폭우가 쏟아졌다. 평생 겪은 비 중 가장 거셌던 것 같다.


세차장으로 몸을 피했으나 얇은 차양막 위로 빗물이 그대로 흘러내렸다. 결국 전신이 젖은 채 휴대전화만 움켜쥐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하늘이 인간의 나약함을 시험하듯, 무심히 쏟아지는 물줄기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20분쯤 지나 빗줄기가 잦아들자 흠뻑 젖은 몸으로, 교구청으로 돌아왔다.


현관에서 만난 형제님이 웃으며 “많이 맞으셨네요” 하고 인사했다. 나는 쑥스레 “예, 그렇게 됐습니다”하고 답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만약을 위해 우산을 준비해야 했구나.’ 곧 떠오른 말씀은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였다. 열 처녀의 비유 속 한 구절이다. 인생에 버려도 좋은 하찮은 시간은 없다.


순간의 선택이 하루를 만들고, 하루가 쌓여 일생이 된다. 우리는 언제 주님께서 부르실지 모른다. 그러므로 단 하루도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된다. 기도와 선행, 나눔과 사랑은 단숨에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습관이자 태도다. 작은 정성이 모여 큰 사랑을 이루듯,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열매를 결정한다.


장대비 속 우산 없이 서 있던 내 모습은, 주님을 맞을 준비 없이 세상에 선 꼴이었다. 언제 닥칠지 모를 폭우에 우산을 준비하듯, 우리 또한 삶의 끝을 향해 깨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 순간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주님을 찾고 사랑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준비 없는 기다림은 결국 허망할 뿐이다. 반대로 미리 깨어 준비된 삶은, 비록 길이 험해도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드러내는 은총의 표지가 된다.



글 _ 이용훈 마티아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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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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