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1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신앙에세이] 주님 친구분이 제 앞에 오셨네요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추석 연휴 당직을 시작하며 환자들의 수술 부위를 소독하기 위해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전날 장시간 무단 외출을 했던 젊은 환자에게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퇴원하시라고 훈계조로 말했습니다. 잠결에 일어난 환자는 화를 내며 “왜 좋게 말하지, 감정을 실어 말하냐”고 따졌습니다.


남은 환자들의 소독을 마치고 다시 만난 그 환자. 컴퓨터로 기록하며 이야기를 듣는데 “왜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냐”고 또다시 화를 냈습니다. 감정이 격해질 때 얼굴을 보지 않고 듣는 버릇이 그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감정이 실려 들었다면 사과한다고 말했고, 환자도 연장자에게 화를 낸 것이 미안하다며 무단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악수하며 마음의 앙금을 풀었습니다.


환자는 불편한 몸을 치료받으면서 대접받기를 원하고, 의사는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물론 어느 한쪽이 침해받았다고 느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2년 전 ME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서호본당 주임 권기철(안젤로) 신부님께 인사를 드렸을 때, 신부님은 “그곳에서는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의 느낌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라고 조언하셨습니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고 상대의 처지와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면, 평화보다 분쟁과 갈등이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서로의 느낌이 다름을 인정하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몸이 불편한 환자를 만나는 의료인에게 환자에 대한 존중은 가장 중요한 치료입니다.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30여 년 전, 연천군 보건의료원 응급실 당직 중에 시골 폐가 돼지우리에서 쓰러져 있던 분을 경찰이 급히 데려온 적이 있습니다. 온몸에서 심한 악취가 나는 환자였기에 주변 사람들은 가까이 가기를 꺼렸습니다. 저는 그분을 수돗가에서 씻기고 새 옷을 입혀드린 뒤, 퇴원할 때까지 대소변을 받았습니다.


현재 근무하는 공공병원에도 노숙자들이 많이 옵니다. 냄새가 심하고 피부 상태가 불결해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헐벗고 아픈 이를 제일 위에 앉히시고 이들에게 하는 것이 본인에게 하는 것과 같다고 깨우쳐 주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겸손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겸손과 사랑으로 다가간다면 상대방의 아픔은 조금 더 빨리 치유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항상 제 옆에 계십니다.



글 _ 김덕원 파스칼 바일론(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5-10-2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10. 21

탈출 15장 13절
당신께서 구원하신 백성을 자애로 인도하시고 당신 힘으로 그들을 당신의 거룩한 처소로 이끄셨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