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를 발표하고, “성모 마리아에게 ‘공동구속자’라는 호칭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속자임을 강조했다. 본지는 교황청 복음화부 첫복음화와 신설개별교회부서 국장 한현택(아우구스티노) 몬시뇰의 기고를 통해 공지의 주요 내용과 의미를 살펴보고, 성모님에 관한 표현과 성모신심이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며칠 전 성모 신심과 성모님의 호칭에 대한 교황청 신앙교리부 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를 읽어봤다. 논쟁적이지 않고 차분하며, 강요하지 않고 친절히 논증을 전개하는 참 아름다운 문헌이다.
성경, 교부, 스콜라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넘나들며 성모님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이해를 도모하는 문헌을 읽으며, 많은 기도와 연구로 이 문헌을 준비하셨을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정식으로 우리말 번역본이 나오면 신부님, 수도자, 신학생들은 물론이고 마리아론에 관심 있는 분들은 모두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길지도 않고, 영적 독서가 되면서 신학 공부가 되는 문헌이다.
그리고 이 문헌을 읽은 지 며칠 후 교황청이 성모님을 공동구세주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수백 년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간단히 전하는 기사를 보았다.
사실 이 문헌이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이 호칭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교황청의 권위로 단순히 최종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만약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면 한두 페이지의 선언문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 문헌은 우리가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이해 위에서 성모님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고 여겨진다.
이 문헌에서 무척 반가웠던 부분은 성모님께서 무엇보다 사도들보다도 먼저 부르심을 받으신 첫 제자, 가장 완전한 제자라는 가르침이었다.(73항)
또 성모님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명확한 교의적 설명을 제공한 것도 반가웠다. 성모님의 중재자적 역할은 그리스도의 중재자 역할에 참여함으로 가능한 것이지, 성모님께서 ‘마치 그리스도와 평행한 어떤 중재적 역할’을 하시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믿음과 사랑으로 모범이 되시는 우리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계신다. 마치 땅 위에 계신 어머니들께서 자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모님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 앞에서 서로를 위한 중재자가 되어줄 수 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성인들의 통공’ 교리의 가르침이다.
물론 거룩한 이의 기도는 더 큰 힘을 지닌다는 것을 우리는 자연스러운 신앙 감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생활을 깊이 하시는 분들께 기도 중에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기억해 주길 자주 부탁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가까운 수녀님께 기도를 청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점에 대해 문헌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는 배타적이지 않다고 가르친다.(28항)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을 독점하지 않으시고 당신 피조물들 특히 인간과 나누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이 선의 ‘유비(analogia boni)’라는 원리에 따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자적 역할에 ‘동참(participatio)’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장 완전한 제자이시자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천국에서 하느님의 생명에 누구보다 더 깊이 일치하고 계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사랑하신 제자 즉,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어머니’로 주신(요한 19,27 참조) 성모님의 전구는 무척 힘이 있다는 것도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부 하느님이나 성자 예수님은 뭔가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지만, 성모님은 편하게 다가가서 부탁할 수 있는 자애로운 어머니이기 때문에 성모님께 기도한다는 생각은 심각하고 위험한 신학적-영성적 오류이다.< 다음 호에 계속 >
글 _ 한현택 아우구스티노 몬시뇰(교황청 복음화부 첫복음화와 신설개별교회부서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