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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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모랄레스 <5성부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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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 성월인 11월에는 자연스럽게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즉 레퀴엠을 듣게 됩니다. 특히 지금처럼 혼란한 세상에서는 레퀴엠에 담긴 위안의 메시지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레퀴엠은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죽음을 노래하지만, 또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님을 노래합니다.


레퀴엠 전례문은 그레고리오 성가부터 21세기 작곡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걸작 레퀴엠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전례용 음악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예술 작품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아울러 갖춘 작품이 많지요.


이번 호에서는 크리스토발 데 모랄레스(Crist?bal de Morales, 1500~1553)의 5성부 <레퀴엠>을 소개합니다. 에스파냐의 폴리포니 교회음악은 16세기에 황금기에 도달했습니다.



16세기 초부터 에스파냐와 플랑드르가 동군 연합을 이루면서 당대 음악의 중심지였던 플랑드르 음악이 이베리아반도로 전파되었고, 여기에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 같은 성인들이 이끈 강렬한 영적 부흥, 신대륙에서 유입된 부, 정치적 역학 관계가 어우러진 결과였습니다.


거의 한 세기에 걸쳐 등장한 수많은 대가의 선두에 있는 작곡가가 바로 모랄레스입니다. ‘에스파냐 음악의 빛’이라 불렸던 그는 세비야 출신으로, 오랫동안 로마에서 활동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가 쓴 <레퀴엠>은 어둡고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인간적인 열망을 엮었다는 느낌입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어둡고 진지한 감정도 있지만, 모랄레스의 <레퀴엠>은 최후의 순간에는 불완전한 모든 게 완성되리라는 소박한 믿음을 노래하는 ‘희망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퀴엠은 이렇게 슬픔과 두려움보다는 안식과 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죽음을 멀리하고 회피하는 우리 현대인보다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일상생활에서 받아들였던 것일까요?


모랄레스의 <레퀴엠>에는 또 다른 작은 에피소드, 혹은 삽화가 있습니다. 갈리스토 3세, 알렉산데르 6세 등 에스파냐 출신 교황들이 재위한 이래 교황청 시스티나 성가대에는 에스파냐 출신 음악가들이 많이 활동했습니다.


모랄레스는 1534년부터 1545년에 고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시스티나 성가대의 가수로 활동했는데, 이 시기는 바로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경당에서 <최후의 심판>을 그린 시기(1536~1541)와 겹칩니다.


그의 <레퀴엠>이 1544년에 출판되었음을 감안하면, 위대한 회화와 위대한 음악 작품이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모랄레스가 노거장의 그림을 보며 영감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업 중인 그림을 보며 모랄레스가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흥미롭습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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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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