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열린 대규모 진료 봉사 때 동네 한 주민이 아이들을 데리고 클리닉을 찾아 상담을 하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 중심가에서 차로 두 시간을 달리면, 깔로오칸시가 나온다. 우리의 1970년대를 떠올리는 이 도시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까마린 지역에 자비의 메르세다리아스 수녀회 소속 수녀 4명이 파견돼 있다. 수녀들은 66㎡ 남짓한 공간에서 클리닉을 운영하며 가난하고 아픈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클리닉에는 한 달에 두 번 필리핀 현지 의사가 방문하는데, 이 때마다 300명 넘는 환자가 몰려온다. 진통제 한 알 없이 통증을 견디며 의사가 오는 날만을 기다려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처방전을 받아도 환자들은 며칠 뒤 다시 수녀들을 찾아온다. 처방된 약을 살 돈이 없어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다.
5년간 현지에서 선교하다 귀국한 손은진(가타리나) 수녀는 “어제 건강하게 웃고 인사하던 사람이, 다음날 세상을 떠나는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은 곳”이라며 “한국에서라면 금방 나았을 상처나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비포장 도로마다 먼지가 날리고, 지프니가 뿜어내는 매연이 공기를 뒤덮는다. 강에서 악취가 올라오고 거리 곳곳엔 쌓인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다. 그래서인지 주민들은 기관지염과 폐렴을 달고 산다.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 질환자도 많지만, 약을 구하는 건 꿈같은 일이다. 마을엔 수도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주민들은 드럼통에 빗물을 받아놓고 쓴다.
자비의 메르세다리아스 필리핀 공동체의 한 수녀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다.
아이들의 삶은 더 열악하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거리에서 구걸하는 게 일상이 됐다. 수녀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클리닉으로 오게 해 매일 음식을 챙긴다. 굶주리는 다른 아이들도 눈에 아른거리지만, 수녀회 형편상 스무 명 정도에게만 먹을 것을 주고 있다.
클리닉은 단순한 진료소가 아니다. 수녀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친다. 아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임신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 미숙아를 낳는 십 대 여학생들에겐 기꺼이 쉼터가 돼준다.
수녀회는 올해 7월 한국에서 의사들과 봉사자들을 초대해 사흘간 대규모 진료 봉사를 펼쳤다. 좁은 클리닉으로는 감당이 안 돼 옆 본당까지 빌렸다. 폭우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주민들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흘 내내 클리닉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난생처음 소변검사·혈액검사 등을 받고 무료로 약과 영양제를 얻은 주민들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손 수녀는 “클리닉이 워낙 비좁다 보니 새 건물을 지어 주민과 아이들을 더 돌보고 싶다”면서 “하지만 지금 시설을 유지하기도 빠듯해 늘 미안하고 안타깝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후견인 : 자비의 메르세다리아스 수녀회 아시아 지부장 마르시아 수녀
“우리 수녀회는 1878년 스페인에서 설립됐고, 전 세계 19개 나라에서 500여 명의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2001년 1월 광주대교구에 진출했습니다. 필리핀 공동체가 돌봄센터를 짓는데, 한국 신자들의 사랑과 정성이 보태진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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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회에 도움을 주실 독자는 23일부터 29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3)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