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한일주교교류모임을 위해 일본 히로시마에 모인 한국과 일본 주교단은 11월 19일 평화기념공원 내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함께 기도하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했다.
위령비 앞에 선 주교단은 옥현진 대주교(시몬·광주대교구장)와 우메무라 마사히로 주교(라파엘·요코하마 교구장, 일본 주교회의 부의장)의 헌화로 추모식을 열었다. 이어 주교단은 주모경을 바치고, <고향의 봄>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를 함께 부르며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을 기렸다.
위령비는 1970년 한국에서 제작한 뒤 히로시마로 옮겨 세운 높이 5m가량의 비석으로, 비문은 전 대구대교구장 고(故) 이문희(바오로) 대주교의 부친인 이효상 의원이 썼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강제 징용 노동자를 포함해 약 5만 명의 한국인이 히로시마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교단은 평화기념공원과 원폭자료관도 둘러보며 핵무기로 발생한 참상을 확인했다.
주교단은 이날 위령비 방문에 앞서 리가 로얄 호텔 히로시마 대회의실에서 ‘한국의 관점에서 본 원폭 자료관’을 주제로 히로시마평화교육연구소 이승훈 씨의 강의를 들었다.
한일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사 교재 제작을 위해 23년간 활동해온 이 씨는 “일본 정부가 전쟁 피해로 인정하는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뿐 아니라 중국, 필리핀 등 많은 곳에서 수많은 생명을 빼앗았다”고 말했다. 그는 “히로시마가 평화의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한 일본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자 회복 ▲재발방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의 후 간논마치성당에서 봉헌된 미사를 주례한 이용훈 주교(마티아·수원교구장, 주교회의 의장)는 “배는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거친 파도를 헤치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항구에 머무는 평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과거 아픔의 상처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미래의 바다로 나아가는 용기의 평화”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