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2025) 탄생 800주년을 맞아 한국 학계가 지난 수십 년간 이뤄 온 연구 성과를 성찰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중세철학회(회장 손은실)가 주관하고 한국성토마스연구소가 공동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는 11월 29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이상섭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학술대회의 첫 번째 발표는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박승찬(엘리야) 교수가 맡았다. 박 교수는 한국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 연구가 어떻게 뿌리내리고 발전해 왔는지 100년의 흐름을 개관했다. 그는 “해방 이후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이 번역서를 중심으로 소개되기 시작해, 1980~90년대에는 다양한 서양 학자들의 저작이 연이어 번역되면서 국내 학계가 토마스 철학을 본격적으로 이해할 기반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故) 정의채(바오로) 몬시뇰이 1985년 「신학대전」 번역에 착수한 것은 한국 천주교 철학계, 신학계가 세계 보편교회의 지적 전통에 완전히 접속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박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연세대학교 장욱 교수의 저술까지 아우르며 “토마스 철학이 한국에서 단순한 소개 수준을 넘어 성찰적·해석학적 깊이를 지닌 학문적 분야로 성장해 왔다”고 진단했다.
두 번째 발표는 연세대 철학과 이재경 교수와 가톨릭대 인문사회의학과 정현석 교수가 공동으로 맡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서구에서 전개된 다양한 토마스 해석의 흐름이 한국철학계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됐는지를 분석했다. 발표자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신토미즘이 갖고 있던 독점적 지위가 변화하면서, 토마스 사상이 여러 학문과의 대화 속에서 재해석되는 ‘탈경직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수용됐으며, 가톨릭계가 전승 중심의 해석을 발전시키는 한편, 개신교계에서는 현대적 문제의식에 토마스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전가톨릭대학교 신학과 교수 윤주현 신부(베네딕토·가르멜수도회)는 세 번째 발표에서 1950년대부터 2025년에 이르는 한국 신학계의 토마스 연구사를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전통을 동시에 고려해 정리했다. 윤 신부는 “한국 신학계에서 토마스 연구가 성직자 양성 과정에서 기본 교과로 시작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창조론, 삼위일체론, 윤리학, 성사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연구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20여 년 사이 개신교 신학계에서도 토마스 사상에 대한 관심이 뚜렷하게 증가해, 양 교단 간 학문적 대화가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점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제시했다. 윤 신부는 “이러한 변화 위에서 앞으로 한국 신학은 토마스 사상의 한국적 맥락화, 교단 간 공동 연구의 제도화, 「신학대전」 전체 75권에 이르는 완역과 교육 프로그램 확충, 국제 연구 네트워크 구축 등의 과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표에서는 경북대 윤리교육과 임경헌(티토) 교수가 한국에서 1900년대 이후 발표된 토마스 관련 자료를 정량적으로 분석해, 한국 토미즘 연구가 실제로 어떤 규모와 깊이를 지니고 성장해 왔는지를 객관적으로 제시했다.
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토마스를 다루는 연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단순히 신학과 철학에 국한되지 않고 비교철학, 윤리·정치철학, 사회사상, 교육학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임 교수는 또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이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다학제적 토마스 연구의 균형성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