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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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호흡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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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삼분의 일을 수면에 할애한다. 다시 말해, 아흔 해를 산다 해도 그중 삼십 년은 잠 속에서 보내는 셈이다. 어찌 보면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연약한 육체를 돌보시고자 주신 섭리다. 피곤한 몸이 쉼을 얻고, 무너진 세포가 다시 일어나듯,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마련해주신 회복의 시간이다.


나는 몇 해 전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 고생한 적이 있었다.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코숨 테이프’라는 작은 도구를 알게 되었는데, 입을 막고 코로만 호흡하게 하여 수면을 돕는 방법이었다. 놀랍게도 그 후로는 밤새 목이 마르지도 않고, 물을 찾지 않아도 되었다. 코로 호흡하니 숨결이 깊어지고, 잠도 차분해졌다. 그 경험은 내게 단순한 건강의 차원을 넘어, 하느님께서 주신 ‘호흡’의 의미를 다시 묵상하게 만들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호흡을 생명과 직결된 선물로 전한다. 엘리야가 죽은 아이 위에 엎드려 기도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다시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 주셨다(1열왕 17,21-22 참조). 또 사도행전은 분명히 말한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사도 17,25) 호흡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되지만, 사실은 순간순간 하느님께 의탁하는 명백한 증거이며, 그분의 은총 속에서만 지속되는 기적이다.


입으로 숨을 쉬면 공기가 걸러지지 않고 바로 들어와 병에 걸리기 쉽지만, 코로 호흡할 때 공기는 정화되고 몸 깊숙이 스며들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는 마치 신앙의 삶과도 닮았다. 세상의 거친 공기를 아무런 분별 없이 받아들이면 마음이 쉽게 병들고 갈라지지만, 기도와 말씀이라는 여과 장치를 통해 받아들일 때, 영혼은 맑아지고 주님 안에서 쉼을 얻게 된다. “그가 제후들의 호흡을 끊으시니 세상의 왕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는구나”(공동번역 시편 76,12)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숨결조차 주님의 손안에 달려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호흡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드러내는 작은 기적이다. 우리는 그 숨결로 노래하고, 기도하며, 이웃을 사랑할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올바른 호흡은 곧 올바른 신앙의 삶을 닮았다. 나는 이제 단순히 잘 자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매 순간의 호흡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이 주신 생명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고자 한다. 이런 기도를 바치고 싶다. “주님, 제게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의 숨이 멈추지 않는 한, 그 모든 순간이 주님의 은총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깊은 숨결마다 주님을 찬미하게 하시고, 내쉬는 숨결마다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저의 수면 속에도, 깨어 있는 삶 속에도 성령의 숨결로 충만하게 하시어, 끝내 제 호흡이 멈출 그날에는 영원한 생명의 품으로 저를 안아 주소서. 아멘.”



글 _ 이용훈 마티아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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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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