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 열린 FABC ‘희망의 대순례’에는 7명의 주교를 포함해 27명의 한국 순례단이 참여했다. 한국 순례단으로 참여한 수원교구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이성훈(안셀모) 연구위원의 참관기를 소개한다.
FABC(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희망의 대순례’는 내게 하나의 영적 체험이자, 아시아교회가 걸어가야 할 새로운 지평을 직접 목격한 시간이었다. 32개국에서 모인 1000여 명의 대표단이 한목소리로 기도하고 토론하는 순간은 아시아교회가 얼마나 넓고도 생생한 ‘하나의 몸’인지를 다시 느끼게 했다.
이번 대회는 2022년 FABC 창립 50주년 방콕회의의 후속 회의였고,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이어지는 시노달리타스 이행기간 중에 로마가 아닌 아시아 현장에서 열린 희년 ‘희망의 순례’였다. 그만큼 역사적 의미가 큰 행사였다.
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시노달리타스 방식의 ‘성령 안에서 대화’가 실제로 구현된 장면이었다. 주교·사제·수도자·평신도가 한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체험을 경청하며 성령 안에서 식별하는 시간은 단순한 토론을 넘어선 ‘교회론적 전환’의 경험이었다. 여성과 청년의 적극적 발언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전례 역시 풍성했다. 아시아 각국의 문화가 살아 있는 미사와 찬양 그리고 젊은 밴드가 이끄는 기도는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새로운 형태의 전례 체험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남았다. 시노드 방식의 핵심은 ‘사전 준비 - 나눔 - 식별 - 종합’의 과정인데, 이번 대회는 준비 단계가 충분치 않았다. 따라서 필자를 포함한 한국 참가자들과 다수 참가자가 대회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참석했다.
특히 개인·문화·사회·생태의 다차원적 복음화를 강조한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1975)와 「복음의 기쁨」(2013), ‘신앙의 토착화와 문화의 복음화’를 강조하는 FABC의 삼중대화(가난·문화·종교)를 숙지하지 못한 채 참석한 것이다.
이로 인해 나눔이 대체로 개인의 회심과 선교 경험에 국한되었다. 만약 국가별로 FABC 「방콕 문서」를 미리 읽고 복음화의 경험과 도전을 성찰하고 문서로 만들었다면, 단순한 나눔을 넘어 공동 식별과 통합적 복음화를 위한 구체적 후속 실천 계획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대회에서는 예수 부활 2000주년인 2033년을 아시아 복음화의 이정표로 삼자는 제안이 큰 공감을 얻었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톨릭 비율이 가장 낮은 대륙(3.4)이며, 절반 이상의 국가에서 신자 비율이 1를 넘지 못한다. 한국은 1960년대 후반 3.4를 넘고 2005년 10에 도달했지만, 현재 정체상태다. 그러나 필리핀과 동티모르를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신자율을 보이고 있기에, 아시아교회가 한국에 크게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페낭에서 확인한 가장 뜨거운 기대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 대표단의 홍보가 큰 호응을 얻었고, 많은 참가자 특히 아시아 청년들이 서울 WYD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의 김동원(비오) 신부의 선교 경험 나눔 또한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중국에서의 선교 경험을 ‘스테인드글라스’로 비유하면서, 선교사 없이 평신도 청년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교회의 정신에 따라 아시아 청년 복음화를 위한 디렉터리·가이드·대사전을 만드는 사업을 제안했고, 많은 참가자가 관심을 표명했다.
아시아는 인구 절반 이상이 30세 미만인 ‘젊은 대륙’이다. 청년이 복음화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될 때, 아시아교회는 비로소 새 길을 열 수 있다. WYD는 아시아 청년의 신앙 증언의 장이자, 청년 주도 통합적 복음화 방법론을 공유하는 장이며, 2030년 FABC 60주년과 2033년으로 이어질 아시아 청년 복음화 네트워크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기대하게 됐다.
페낭을 떠나는 순간, 나는 희년 ‘희망의 대순례’가 끝난 것이 아니라 2033년을 향한 ‘더 큰’ 희망의 순례를 막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페낭에서 타오른 희망의 불꽃이 2027년 서울에서 구체적 열매를 맺고,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함께 2033년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가 계속 이어지길 기도한다.
글 _ 이성훈 안셀모(수원교구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