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성지순례가 끝이 났지만, 저의 정신은 생각보다 건강했습니다. 성지순례를 도중에 포기했다고 해서 절망에 빠졌다거나, 더 이상 자전거로 성지순례를 이어갈 수 없음에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국도에서 흙바람과 튀기는 돌을 맞아가며 성지순례를 이어가지 않게 해준 하느님에게 감사했습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에, 영하의 날씨에 침낭 하나만 가지고 노숙했어도 살아있음에,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 포기한 것에 감사했습니다.
4박 5일의 자전거 성지순례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나고 곱씹어 보니 감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처음 성지순례를 결심했을 때처럼, 뇌리에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성지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막연하게 성지순례를 해야겠다는 패기가 아닌 그동안의 감사함으로 성지순례를 이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의원도 찾아가 다리를 회복하려 했지만, 두 다리는 좀처럼 본래 컨디션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전거가 아닌 차로 성지순례를 이어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차로 하는 성지순례 때는 모든 순간이 꿈만 같았습니다. 비록 차에서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는 잘 수 없었지만, 수리산 성지 앞에서 노숙했을 때보다는 훨씬 더 편하고 따뜻했습니다. 덕분에 어디서 잘지 고민하지 않고 여행을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몸이 편안해지자 성지에서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거친 숨을 내쉬며 성지에서 쉬는 것 대신 성지 안내 글을 읽으니 성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리성지에서는 수녀님을 도와 눈을 쓸었고, 갈매못 순교 성지에서는 살면서 처음으로 성체조배를 해보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산막골 성지에서는 미사 때 독서 봉사를 하는 의미 있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순간마다 저의 희망의 불꽃이 4박5일 만에 맞이한 절망에도 꺼지지 않았음에 감사했습니다. 30일 동안 26곳의 성지를 방문했고, 장소는 서울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희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치지 않는 패기로, 작은 것에 감사하는 겸손으로, 절망을 받아들이는 용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저 제 신앙 체험으로 끝날 수 있었던 희망은 이 지면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련의 순간들이 모두 저에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시나,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글 _ 조각희 프란치스코(수원교구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