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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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당구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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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청에서는 점심시간이 지나면 신부님들이 삼삼오오 당구대 앞으로 모인다. 젊은 시절에 나는 당구장을 불량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대학에도 당구학과가 생기고, 당구장은 친구와 가족이 함께 즐기는 건전한 여가와 소통의 공간이 되었다. 나 역시 늦은 나이에 배우다 보니 실력은 더디게 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곤 한다.


네모난 당구대 위에서 작은 공들이 서로 부딪히며 길을 찾아가는 모습은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굴러가기도 하지만, 힘이 조금만 지나치거나 방향이 어긋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의도치 않았던 공이 맞아떨어져 멋진 득점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깨닫는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계산하고 준비했더라도 결국 모든 것을 완성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성경은 말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실패와 좌절,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도 결국 주님의 섭리 안에서는 선으로 바뀐다.


당구는 흔히 멘탈 게임이라 한다. 순간의 흔들림이 큰 결과를 낳듯, 신앙도 마음을 지키는 싸움이다. 기분과 상황에 따라 우리는 쉽게 흔들리지만, 중심을 주님께 두면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에페 3,11)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세우는 작은 계획들이 결국 그분의 큰 계획 안에서 하나로 모일 때, 우리의 삶은 놀라운 열매를 맺는다.


또한 당구를 잘 치려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올바른 자세를 익히고, 힘을 빼는 법을 배우며, 차분히 기다리는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신앙도 그러하다. 기도와 말씀, 나눔과 자선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작고 성실한 실천들이 쌓일 때 영혼은 점점 주님을 닮아 간다. 


바오로 사도가 “내가 이렇게 계획하면서 변덕이라도 부렸다는 말입니까?”(2코린 1,17)라고 묻듯, 신앙의 길에서 세우는 계획은 인간적 욕심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합당해야 한다. 넘어지고 실수해도 당구에서는 그다음 날 다시 큐를 잡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신앙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한 시선을 지키는 것이다. 매일의 기도는 그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다.


“주님, 제 삶의 모든 순간이 공처럼 이리저리 부딪히며 흔들릴지라도 결국 당신께서 마련하신 길을 향하게 하소서. 제 작은 노력과 계획들이 당신의 큰 섭리 안에서 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소서.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당신을 바라보게 하시고, 매일의 기도와 말씀으로 제 영혼이 다듬어지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공의 궤적이 되게 하소서. 아멘.”



글 _ 이용훈 마티아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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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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