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렇게 다양하게 맡겨진 삶을 어떻게 전개하여 나가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흐름은 달라진다. 우선 내 자신부터 변화되지 않으면 좋은 삶을 살아가기 어렵고 이웃에게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여러 피정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삶에 여유가 찾아왔을 때, 디자인실에서 눈여겨보았던 잡지에 수록된 그림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유리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내 삶의 흐름은 달라졌다.
비록 바다는 아니지만, 작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작업장을 예쁘게 마련하였다. 작업장을 열고 처음에는 흙을 빚는 작업보다는 예쁜 집에 신자들을 초대하는 일에 집중했다. 주말마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찾아오는 이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에 마음을 다하였던 것 같다. 소극적이던 나에게 넓은 작업장은 큰 놀이터가 됐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시간 외에는 작업에 엄청난 열정을 쏟아부었다. 성경 말씀의 모든 구절이 작품의 소재가 되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작업했다. 가마에 온도가 오를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새벽 1시를 넘기는 일이 허다했다.
산속에서 밤낮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기도할 일도 많았다. 작업장에서 불을 지피고 마무리하면서 깜깜한 밤중에 문을 잠그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오싹해서 “주님 저를 지켜주십시오!”라는 화살기도를 수도 없이 되뇌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산모퉁이 거대한 공동묘지를 꼭 지나쳐야 해서 더욱 공포를 느끼며 운전대를 꽉 움켜잡았다. 지금도 온몸이 무서움으로 오그라들게 하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열심히 작업한 작품들이 빛을 보게 됐다. 2003년에는 첫 개인전을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서 했다. ‘나에게로 오너라’, ‘빛이 되어’, ‘착한 목자’ 등 성경 말씀을 주제로 한 개인전이었다. 그 이후 흙으로 성물을 제작하면서 새롭게 해보고 싶은 작업이 떠올랐다. 나무를 이용하여 성작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좋아했기에 작가로서 나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다시 떠올랐다.
나이테가 분명해 무늬가 아름다운 물푸레나무를 작품의 재료로 삼았다. 물푸레나무를 깎고 8번의 옻칠을 한 뒤, 완성된 성작 위에 성화를 그려 넣었다. 성작과 성반으로 구성된 세트를 제작했고, 봉성체용 소성작을 전시해 좋은 성과를 올렸다. 가끔 내 성작 작품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을 보면 감사한 마음과 함께 가슴이 먹먹해지는 뿌듯함을 느낀다.

글 _ 최계진 마리아(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