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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복음] 잔소리와 회초리를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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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목하던 시절, 저는 명절이 너무 싫었습니다. 주변의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은 전부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들어가거나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저는 혼자 남아 그곳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명절이면 문을 여는 식당들도 별로 없었기에 ‘뭘 해 먹을까?’ 고민하며 외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기도 하고, 친지들에게 연락도 옵니다.


부모님은 명절에 잘 지냈는지 궁금해하시고,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안부도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잘 지내고 있다고, 별일 없고 맛있는 명절 음식도 많이 먹었다고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하고 나면 오히려 허무함이 더 밀려왔습니다. 투정도 부리고 싶고, 짜증도 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더 답답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시기 제가 가장 그리웠던 것은 아마도 부모님의 잔소리와 회초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웃으면서 아무 일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히 지내시라고 안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마음 상하기도 하는 바로 그 모습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동할 수 없어지자, 한국 신자들이 함께 명절을 지내자고 연락이 왔고, 10여 명과 함께 음식을 해 먹으며 명절을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신자들은 술도 거나하게 한잔하고, 팬데믹 상황에 대해 투덜거리기도 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인간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웃으며 건네는 안부나 인사가 아니라, 때로는 투덜거리고 때로는 다투더라도 함께 있다는 그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3만5000여 명의 북향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북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어렵게 북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하기도 하지만 제가 중국에서 겪었던 경험을 생각하면 통화가 끝나도 북향민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외로울지도 모릅니다. 


“올해는 볼 수 없지만, 내년에는 꼭 만나요”, “다음 명절에는 인사드리러 갈게요”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80여 년을 갈라져서 사는 것입니다. 언제쯤 가족을 다시 만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그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던 일, 그래서 가끔은 다음으로 미루었던 일이 북향민들에게는 희망이고 꿈입니다. 여러분은 명절을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연휴이기에 놀러 갈 생각에 사로잡혀 계십니까? 부모님이나 친지들의 잔소리가 싫어 가족 만남을 미루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귀찮아하고, 때로는 힘들어하는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기대요, 희망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밤 9시에 바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 운동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야말로 가장 큰 힘이며 기적을 일으키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글 _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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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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