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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사 한 페이지] (4) 수원가톨릭대 설립·광암학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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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는 신학교 설립 초기부터 사제 양성과 교육을 교구 사명의 핵심으로 삼아 왔다. 신학교 설립 이전 전 교구 차원의 성소 활성화 운동부터 수원가톨릭대학교의 탄생, 그리고 광암학원을 통한 교육 사업의 체계화에 이르기까지, 교구가 걸어온 사제 양성과 교육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신학교 설립 전부터 교구 사제 양성에 힘써


1984년 수원가톨릭대학교 설립 이전부터 교구는 사제 양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이는 교구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각 본당과 관련 기관으로까지 확산하며 전 교구적인 사제 양성 운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제2대 교구장 김남수 주교(안젤로, 2002년 선종)가 취임한 1970년대 중반에는 열악한 재정 여건 속에서도 다양한 지원 대책을 펼쳤다.


교구는 본당별로 ‘사제 양성 후원회’를 조직해 사순 시기 절제와 나눔을 실천하는 운동을 권장했으며, 사제들은 자발적으로 3만 원 이상의 성금을 모아 신학생 양성 기금을 조성했다. 교구는 모든 본당과 기관에서 매월 한 차례 ‘사제 성소의 날’을 정해 봉헌하도록 하고, 본당과 단체별로 성소 지망자와 희망자를 발굴하는 한편 사제 양성을 위한 연수와 모임, 기도의 날을 정례화해 나갔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후반부터 수도권 인구 증가로 교구 내 신자 수가 급증하면서 사제 수는 상대적으로 부족해졌고, 사목 현장의 어려움은 계속됐다. 이에 김남수 주교는 1980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수원에 대신학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건립 비용과 교수진 확보 등의 현실적인 제약으로 계획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했다. 당시 사목자 수급 문제는 교구뿐 아니라 한국천주교회 전체가 안고 있던 공통의 과제였다.


한국교회 제4대신학교 ‘수원가톨릭대학교’ 설립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82년, 주교회의 성직위원회는 한국교회의 장기적인 사제 양성 수요를 고려해 수원 지역에 제4대신학교를 설립하자는 안을 제시했고, 이 안은 같은 해 5월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에 교구는 1982년 8월 대신학교 건립 추진을 공식 발표하고, 성직자 5명과 평신도 3명으로 구성된 ‘제4대신학교 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교구는 충분한 건축 면적과 접근성을 고려해 당시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왕림리에 있던 왕림본당 부지를 신축 부지로 선정했다. 이후 1983년 3월 교황청으로부터 학교 설립 인준을 받고, 4월 7일 본관 신축을 위한 기공식을 거행했다.



설립추진위원회는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해 교구 차원의 모금 활동을 본격화했다. 교구 내 모든 신자가 참여하는 모금을 진행하고, 지구별 바자를 열었고, 특별강론 신부를 파견해 본당별 모금 활동도 이어갔다. 같은 해 9월 당시 문교부(文敎部)는 ‘수원가톨릭대학’ 신설을 승인하고 김춘호(베드로) 신부를 초대 학장으로 임명했다.


본격적인 건립 단계에 접어들며 재정 확보는 더욱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당시 건립추진위원장 황익성 신부(아우구스티노, 2008년 선종)는 신학교 건립의 필요성과 재정 상황을 교구 전반에 알리며, 신자들이 각 가정 단위로 매년 일정 금액을 봉헌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구 역시 소유 토지 일부를 매각하고, 김남수 주교가 직접 교황청과 미국, 유럽 등을 방문해 원조를 모색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같은 호소에 신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응답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세뱃돈 봉헌을 비롯해 결혼 패물을 익명으로 내놓은 신자, 비신자의 자발적인 참여까지, 다양한 헌신의 모습은 당시 수원주보를 통해 전해지며 공동체의 참여를 끌어냈다.


공사비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성직자와 신자들의 지속적인 협력 속에 공사는 차츰 진전을 이뤘다. 그 결과 1987년 9월 모든 공정을 마무리하고, 1988년 5월 6일 김남수 주교 집전으로 수원가톨릭대학교 축복 미사가 봉헌됐다.


김남수 주교는 미사에서 “수원가톨릭대학교는 민족 복음화를 향한 여정 속에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태어난 성소의 요람”이라며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해 사제 양성의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자”고 당부했다. 수원가톨릭대학교는 이날을 개교기념일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수원가톨릭대학교는 개교 이후 사제 양성에 힘을 기울여 1989년 첫 부제서품식, 1990년에는 첫 사제서품식을 열었다. 한국에서 네 번째로 설립된 대신학교인 수원가톨릭대학교는 이후에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사제 양성을 이어가며, 교구와 한국교회의 사목 기반을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다.



교구의 교육사업 ‘광암학원’


교구는 수원가톨릭대학교 설립을 결정한 이후, 교구 차원의 교육 사업을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1983년 5월 학교법인 광암학원을 설립했다. 광암학원 이사장은 김남수 주교가 맡았으며, 이사진에는 정덕진 신부(루카, 1996년 선종)와 김창린 신부(필립보, 2012년 선종)를 비롯한 6명의 사제가 참여해 운영을 이끌었다.


광암학원 산하에는 소화초등학교와 광성초등학교를 비롯해 효명중·고등학교, 안법중·고등학교 등 모두 여섯 개의 초중고등학교가 포함돼 교구 교육 사업의 기반을 이뤘다.


이 가운데 안법중학교는 1909년 당시 안성본당 주임 앙투안 공베르 신부(공안국, 1950년 선종)가 설립한 안법학교에서 출발했다. 남자 초등학생 대상 교육기관으로 시작했으나, 해방 이후 초등교육 의무화로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1974년 중학교로 개편됐다. 안법고등학교는 신자 학생 교육과 성소 계발에 힘쓰고 비신자 전교에도 관심을 기울여 1990년대 전반까지 매년 약 1~3의 비신자 학생들이 세례받는 성과를 거뒀다.


효명고등학교는 1953년 당시 서정동본당 주임 유수철 신부(도미니코, 1977년 선종)가 설립한 효명고등공민학교에서 비롯됐다. 가난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농촌 청소년들에게 중등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출발한 효명학교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건학 이념 아래 성장해 왔다. 이후 1981년 중학교가 분리되면서 효명중·고등학교 체제로 자리 잡았고, 현재까지 평택 지역 인재 양성의 요람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광암학원은 교구 교육 사업을 하나로 묶는 기반이 되어, 신앙과 교육을 함께 아우르는 교구 사목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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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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