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일
기관/단체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성찰 없는 연명의료 중단, 빛바랜 존엄성

연명의료 중단 서약자 320만 명 돌파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한 수녀가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어린 환자를 안아주고 있다. OSV


임종 시기에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에 서약한 사람이 32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이에 따른 교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2018년 임종기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존엄한 죽음을 맞도록 돕고자 도입됐다. 그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이 동반되지 않거나 실적 위주 운영이 이어지면서, 제도 취지인 ‘존엄한 마무리’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보다는 가족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 고통이 수반된 삶은 계속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 등에 따라 의향서 작성에 임한 이들도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의향서 작성 현장이나 온라인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방안’ 언급, 한 여당 의원의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현재의 임종기에서 생의 말기로 당기는 내용 법안 발의 등이 이어지며 ‘생명윤리 논란’에도 불을 지폈다.

교회는 개인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연명의료 결정 시기를 임종기에서 생의 말기로 앞당길 경우, 조력자살과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오석준 신부는 “생의 말기라는 기준 자체가 너무 모호하다”며 “임종기는 아니지만 생의 말기가 2~3년 지속되는 환자들을 볼 때, 이는 존엄한 죽음이라는 명목 아래 더 살 수 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시행된 정책이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과 직결된 생명윤리 정책은 적용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캐나다에서는 한 고령 여성이 의료적 조력자살 의사를 공식 철회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망한 사례가 알려졌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의료적 조력자살 검토위원회가 1월 23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A씨는 의료적 조력자살에 동의했다가 개인·종교적 사유로 이를 철회했다. 그러나 보호자의 재평가 요청 이후 결국 철회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망에 이르렀다.

서울 생명위는 2023년부터 본당을 대상으로 연명의료결정제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오 신부는 “연명의료 여부에 대한 선택이 개인의 주체적 결정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돌봄 부담이나 경제적 압박 등 주변 환경의 영향 또한 작용할 수 있다”며 주변을 둘러싼 요인이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 신부는 제도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당사자 이해 없이 서명만 부추기는 상황에 대해 “국민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정책이라면서 서명 확대에는 적극적인 반면, 제도 설명은 10분 남짓에 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한 320만 명이라는 숫자는 존엄한 죽음을 바라는 국민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준다”며 “그 바람만큼 죽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2-0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2. 4

잠언 17장 27절
말을 삼가는 이는 지식을 갖춘 사람이고 정신이 냉철한 이는 슬기를 지닌 사람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