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을 가득 채웠던 환호와 박수 소리가 잦아들고, 무대를 뜨겁게 비추던 화려한 조명이 꺼집니다. 땀과 눈물, 그리고 붉은 피 분장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씻어내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거울 앞에 서면, 그곳에는 인류의 죄를 짊어졌던 비장한 표정의 ‘예수’ 대신 평범한 청년 김승현이 서 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텅 빈 극장을 나설 때 느껴지는 묘한 공허함은 배우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지만, 저에게 이 순간은 단순한 공허함이 아닌 또 다른 무거운 비장함으로 다가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기도로 깨어있던 겟세마니 동산이 아닌, 경적 난무하는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인류를 구원하겠다며 십자가를 지고 비틀거리던 제가, 오늘은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끼어드는 차에 짜증을 내거나, 직장 상사의 부당한 꾸지람에, 속으로 거친 불평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갈 때마다 저는 화들짝 놀라며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집니다. “무대 위에서는 너를 팔아넘긴 유다 이스가리옷의 배신조차 눈물로 용서했던 네가, 고작 현실의 작은 불편함 하나를 견디지 못하는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거룩함이 일상의 거룩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연기는 그저 관객을 속이고 나 자신마저 속인 위선적인 ‘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앗숨도미네에서 배운 신앙의 정점은 화려한 커튼콜의 갈채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대에서 체득한 사랑을 얼마나 치열하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자처했다면, 삭막한 직장과 사회에서도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상처가 아닌 부드러운 위로가 되도록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술가는 무대 위에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지만, 신앙인은 자신의 ‘삶’ 그 자체를 하느님 앞에 봉헌하는 단 하나의 명작으로 빚어내야 합니다. 비록 무대 위 물리적인 조명은 꺼졌지만, 내 삶이라는 무대에는 하느님이 비추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핀 조명이 항상 켜져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하느님께 캐스팅된 주인공들입니다. 대본은 이미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손에 쥐어져 있고, 연출가이신 그분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오늘도 저는 일상이라는 거대한 연습실에서 ‘사랑’이라는 대사를 읊고, ‘봉사’라는 몸짓을 연습합니다. 비록 나를 향한 환호와 박수는 없지만, 가장 위대한 관객이신 하느님께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계심을 알기에 저는 멈출 수 없습니다. 이 공연은 단기 공연으로 끝나지 않는, 내 생이 다할 때까지 이어질 ‘롱런(Long-run)’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공연은 끝났지만, 우리의 진짜 무대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계속됩니다.
“자, 이제 당신의 삶이라는 막을 올릴 시간입니다.”

글 _ 김승현 대건 안드레아(앗숨도미네 단원)